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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과 아쉬운 언론의 순기능
    Miscellanies 2012. 5. 8. 21:48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안식년할 때다.  안식년의 멋진 마무리를 위해서 Yosemite National Park로 캠핑을 갔다.  공원내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제일 인상에 남았던 건 Half Dome.  90도를 넘는 느낌의 경사벽을 밧줄에 매달려 올라가야되는 암벽으로 요세미티 공원의 상징이다.  너다섯시간 걸려 암벽 밑에 도달해서 바라보니 마지막 경사벽을 올라가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머리 위로 줄줄줄 올라가는 사람들 중에 하나라도 줄을 놓쳐서 내 머리위로 떨어지면 엄청난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녀온 친구들 중 한둘은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말리기도 했다.  내가 가기 바로 전인가 다녀와서 얼마 안 가서인가는 쳐놓은 밧줄 잡지 않고 따로 옆으로 올라가던 사람이 떨어져 죽기도 했다.

    어질어질한 곡예와 같은 밧줄타기 끝에 도달한 Half Dome에서 바라본 요세미티 공원 전경은 정말 환상 그 자체. 내려오기 싫은 발걸음을 억지로 떼서 다시 밧줄에 매달려 암벽 밑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암벽에서 누가 떨어져서 자살을 했단다.  Park ranger라고 하는 공원 관리직원이 한 명 왔고, 추가로 상황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란다.  캠핑을 끝내고 샌디에고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그 얘기가 기억나서 인터넷을 뒤져 도대체 누가 왜 죽었나 알아보려고 했더니 어디에도 한 줄도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1999년부터 샌프란시스코 바로 밑동네에 4년 가까이 살았을 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 Marin County을 잇는 Golden Gate Bridge(금문교)에 기록된 자살자 수가 1000명에 가까워졌을 때, the New Yorker에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자기가 1000명째 자살자가 되겠다고 벼를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니 일단 공식 기록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단다.  또한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자살방지용으로 금문교의 양쪽 인도를 철망으로 덮자는 쪽과 미관상의 이유로 반대하는 측 의견도 실려 있었다.  그 기사를 읽고서야 금문교가 자살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기'있는 장소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 전에는 the San Francisco Chronicle이나 San Jose Mercury와 같은 동네 신문에서 누가 금문교에서 투신 자살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었다.

    오늘 분당 서울대 병원 정신과 의사이자 자살 예방 협회 회장이신 하규섭 박사님이 학부, 원 학생회 공동 초청으로 창의관에서 "마음병"이란 주제로 강연을 해주셨다.  제목은 초청 주최측이 정해주셨다고 하시면서 정신장애에 대한 개론적인 소개, 정책적 예방 및 대책 방법론, 그리고 국내 자살 현황에 대한 통계 자료를 보여주셨다.  정신 장애가 전국민의 10% 이상이 겪는 흔한 병으로 몸이 아프듯 뇌가 아픈 것이므로 그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호소하셨다. 정신의학개론을 한 시간 반에 들은 듯 너무나 명쾌하고 귀에 쏙쏙 들어온 명강의였다.

    인상에 남았던 통계는 우리나라 자살율이 현재 OECD 국가 중 최고인데, 10대, 20대는  OECD  국가들과 비슷한데 반해 60,70,80대 자살율이 비교가 안되게 높다는 점이였다.  질의 응답 시간에 금문교 기사에서 금문교에 철망을 치자는 얘기가 생각나서 우리나라에는 인구의 50% 이상이 고층 아파트에 사는데 이것과의 상관관계를 여쭈었더니, 놀랍게도 자살방법 1순위는 농약이였다.  아직도 국내에서는 사람이 먹으면 즉사하는 농약을 사용하는데 다른 OECD 국가들에서는 오래 전에 사용 금지되어 있단다.  그 다음으로는 목매기, 3번째가 투신자살이란다.  최진실이 압박붕대로 목매 죽은 내용이 언론에 자세히 보도된 이후로, 압박붕대로 인한 자살이 늘었다는 얘기도 해주셨다.  다른 학생이 다시 일어나 질문하길, 언론에서 그런 보도는 듣고 싶지 않은데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했는데, 국내 언론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면서 보도를 계속 하고 있다고 하셨다.

    국내 언론에서는 자살이 1면 기사로 실릴 때가 정말 많다.  OECD 국가에서 자살율 최고라는 수치와 함께.  '왕따', '성적 비관', '가정 불화' 등등의 이유로.  유명인들의 경우는 장례 후 가족들 이야기로 특집 방송이 나가기도 한다.  오늘 하 교수님의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나는 신문에 나온 얘기만 보고 청소년 및 유명인 자살율이 높아서 우리나라가 OECD에서 자살율 1위로구나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살율 1위 원인 중 제일 큰 비중이 60대 이상 노인층 자살이며, 농약이 제일 큰 문제임을 왜 더 열심히 보도하고 있지 않을까?  국가에서 교통사고 사망율을 줄이기 위해서 조 단위의 예산을 쏟아붓는데 교통사고 사망율보다 2배 이상 높은 자살 사망율에 대해서는 불과 년 20억의 예산밖에 책정해놓지 않는지?  이런 정책적 문제점은 왜 수많은 자살 관련 기사마다 언급되지 않는지?  자살에 대해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 외국 언론과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센세이셔널하게 몇몇 자살 사건을 다루면서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정책적 사안들은 왜 더 큰 비중으로 조명해주지 않는지.

    하 교수님께서 자살 예방 및 정책 제안은 우리도 할 수 있고, 해야한다고 하시면서 발표를 끝내셨다.  정신질환은 몸의 일부인 뇌가 아픈 것이다.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듯이, 정신장애로 일상 생활에 불편을 느끼면 의사를 만나 상담을 받아야지, 사회 부적응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  그리고 순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론에 휘둘지말고,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자살 예방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자. 뭐 이런 나름의 결론을 내렸는데, 과연 어떻게? 보건복지가족부 게시판에 의견 개진? 음, 일단 자살예방협회에 기부라도? 음, 일단 블로그에라도 적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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