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성적표 관상학
    Miscellanies 2022. 11. 17. 14:21

    입시철이다. 고등학생들은 수능 준비에 여념이 없고, 대학 졸업반은 취업과 진학에 신경쓰느라 가을학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것이다. 교수들은 중요 업무가 학생 지도이다보니 학생들의 성적표와 이력서를 많이 보게 된다. 지난 20년간 최소한 수천명의 성적표를 봤고 [주1], 수백명의 학생들을 상담했다.  그러다보니 성적표만 봐도 이 학생이 어떤 학부생활을 했구나가 대충 짐작이 간다. 성적표만으로 판단하지는 않지만, 일단 한 학생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큰 흐름을 잡을 수는 있다. 나름 통계에 기반한 성적표의 관상학을 풀어놔본다.

     

    우선, 기초 교양 과목 성적과 전공 과목 성적이 차이가 제법 나는 학생들이 있다. 전공 성적이 좋으면 전공이 적성에 잘 맞는 거라서 대학원 진학 시 자기 소개서에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가 된다. 반대인 경우는 과연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권한다. 성적이 적성이라는 단순한 상관관계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지는 않지만, 다수에게는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쉬운 과목은 쉬운 거다. 어려운 과목은 노력을 더 해야하는데 이런 노력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는지 확인해본다.

     

    특정 학기에 성적이 갑자기 나빠지는 학생들이 제법 있다. 대개 1~2학기 지나 회복한다. 이런 경우는 개인사에 드라마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애정 전선에 큰 변화가 있었거나 가족 구성원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었을 수 있다.

     

    1~2학기 휴학을 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그 때는 왜 휴학을 했고,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본다. 엄청난 계획으로 잘 놀았거나 잠시 다른 일상이 필요했거나 여튼 찍힌 쉼표가 궁금하다.

     

    해외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오는 학생들도 제법 많은데, 어느 대학에 가서 무슨 과목을 들었는지 중요하다. 우리 학교 전산학부의 경우 crankings.org 랭킹에서는 세계 10위권일 정도로 국제 경쟁력이 있다. 대부분 교수들이 학부 교과목에 엄청난 열의를 쏟아붓기 때문에 어지간한 대학에서의 학부 과목보다 잘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대학에서 비슷한 과목을 누가 가르치는지도 대충 파악하고 있다. 교수로 임명되어 연구를 하면서 수백편의 논문을 읽었으니, 수백명의 박사들이 무엇을 했는지 안다는 얘기이다. 대학과 연구소, 산업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실적을 알고 있다.  어떤 교과서를 썼는지, 어떤 실습을 했는지만 들어도 우리 학부 교과목보다 쉬운지 어려운지 가늠할 수 있다. 어학연수처럼 교환학생을 다녀오던 시절은 지났다. 우리 학교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과목들을 듣고 오는 기회로 삼길 추천한다.

     

    가끔 한 학기에 한두 과목만 들은 경우도 본다. 성적이 나빴던 수업을 재수강하면서 기록이 사라졌기도 하고, 그냥 수업을 적게 들었기도 한다. 그냥 휴학을 하고 제대로 놀지 왜 안 그랬을까 잠시 갸우뚱. 동아리 활동이 바빴거나 뭔가 다른 일을 도모하려했던 흔적이라고 해석한다.

     

    모든 학생들에게는 전공 과목을 많이 듣길 추천한다. 수업이 귀찮고, 힘들고, 머리 아프겠지만, 막상 졸업하고 나가서 일하다보면 많이 배워놓은게 밑천이 된다. 성적이 나빴던 과목들의 내용도 막상 상업적 시스템에서 어떻게 응용되는지를 체험하게 되면 갑자기 눈이 번쩍 뜨여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4학년이 되면 대학원 입학이나 취업 지원을 할 때 제출할 성적이 거의 결정된다. 그 이후의 성적은 딱히 쓸모가 없다. 졸업하면 평생 다시 기억할 일도 없다.  그래서 더 맘편한 배움의 기회다. 진학과 취업 준비로 정신없으니까 전공 과목 듣지 말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래도 한두 과목이라도 더 듣고 나가길 추천한다. 학교 다닐 때는 지겹고 재미없는게 강의이겠지만, 그래도 교과서를 쓴 저자부터 이 강의를 제안한 교수, 승인한 교무위원회까지 하나의 강의가 제공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들었음을 한 번만 생각해봐주길.

     

    전필 과목들은 전공 분야에서의 최소한의 소양이다. 전필이 아니어도, 전공 과목 이수 학점을 채웠더라도, 연결되어있는 과목들을 많이 듣고 졸업하면 좋겠다. 모두 A를 받으라는게 아니다. 성적에 상관없이 전산 분야에서 계속 일하는데 두고두고 도움이 된다. 스펙이 별 거 아니다. 다양한 전공 소양을 갖추는 것처럼 좋은 스펙이 또 어디 있을까?

     

    [주1] 격년으로 학부 및 대학원 입시에 참여하면 학부 30명 이상, 대학원 150명 이상 지원자들의 자료를 봐야한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