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학회와 국제 학회의 재정 기반 비교
학회는 특정 전문 분야의 연구원들이 교류하는 장이다. 전문가들이 모여서 발표하고, 연구 결과를 논문지로 출판하기도 한다. 내가 주로 활동하는 한국정보과학회는 “정보과학에 관한 기술을 발전, 보급시키고 학문 및 산업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영리 공익 사단법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근대 과학의 역사가 짧다보니 학회들도 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곳이 많지 않다. 한국정보과학회의 경우 1973년 만들어져서 50년이 넘는 국내 최고(최고 한문)를 자랑한다. 미국에서 컴퓨팅 관련 핵심 학회인 ACM은 1947년 설립되었다. 25년 가량, 2세대 이상 차이가 난다.
학회 운영의 핵심은 대면 교류의 학술대회와 비대면 논문지 출판이다. 내가 종신회원인 국제학회 ACM에는 37개의 SIG(Special Interest Group) 있고, 각 SIG에서 학술대회를 운영하고 저널, 매거진과 학술대회 프로시딩을 출판한다. 내가 참여해온 SIGCOMM, SIGOPS, SIGMETRICS 같은 SIG에서는 single-track 학술대회를 고수해왔다. 대회 자체가 single-track이다보니 발표되는 논문의 갯수가 제한되어 논문 채택률이 10% 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전산 분야에서는 ACM과 IEEE 학회의 저널과 학술대회가 주요 논문 발표의 장이 되지만, 모든 학술지가 학술단체에서 출판되지는 않는다. 노벨상이 수여되는 자연과학분야의 권위있는 3대 저널(Nature, Science, Cells)의 출판사는 다음과 같다. Nature는 Nature Publishing Group, Science는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미국과학진흥회)라는 학술단체에서, 마지막으로 Cell은 Elsevier를 모기업으로 하는 Cell Press에서 출판한다. Elsevier는 Springer과 Wiley와 더불어 세계 3대 출판사라고 불리우며 수천 종의 전문 학술지들을 출판한다. 이런 학술지들을 구독하는데 전세계 대학과 연구소의 도서관들에서 엄청난 돈을 쓴다. ACM과 같은 학술단체의 학술지들은 비영리단체의 본질에 충실해서 구독료가 그리 비싸지 않지만 영리출판사들의 경우 매년 저널 수를 늘리고 3~5년 장기계약을 요구하면서 독과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주1].
비록 비영리 단체이지만 국제 학회들은 수입의 큰 부분이 저널 구독료에서 나온다. 2023년에 발표한 IEEE Annual Report에 따르면, 총 $584 million(2025년 2월 환율로 무려 8468억원!) 수입 중에서 44% 정도의 수입이 저널 구독료, 학술대회 운영으로 37%, 회비 9%, 표준화를 통한 수입이 8% 정도를 차지한다 [주2]. 2023년 같은 경우는 학술대회 운영에서 가장 큰 증가를 보여 팬데믹 이전보다 큰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한다.
국내 학회들은 어떤가? 우선, 한글로 출판되는 학술지들은 국내 도서관에서만 구독하기 때문에 구독료 수입은 매우 적다. 영문 저널지들도 출판하지만 해외 학회들과 비교해 구독료가 크지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정보과학회의 경우, 1년 예산에서 구독료 수입은 4%도 되지 않는다 [주3]. 그러다보니 국내 학회들은 행사에 무게를 두게 된다. 최근 대두하기 시작한 문제는 예전에 비해 활발해진 국내 연구진들의 국제 학술대회 활동에 영향을 받아 신진 연구자들의 유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학회 논문들이 실적 인정을 제한적으로 받다보니 점점 더 국제 학회 활동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국내 학회들은 효율적이고 효용가치가 높은 학술대회 운영을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해왔다.
한국정보과학회에서는 계절마다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10여년 전까지는 4번의 학술대회가 거의 같은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6월 KCC와 12월 KSC에서는 전산학 전분야를 다 아우르지만, 4~5월 SWCS는 튜토리얼 위주로, 11월 iTIP는 공공출연연구기관들의 성과 발표 중심으로 운영된다. 새로 부임한 신임교수 소개의 장이 되는 신진 세션, 해외 최우수 학술대회에 발표된 논문을 소개하는 우수논문 세션 등이 지난 10년 내에 추가된 시도들이다. 2025년부터는 졸업을 앞둔 박사 과정들에게 박사 논문을 소개하는 세션을 SWCS에 도입할 예정이다. 해외 학계의 job market과 같은 기능을 하길 바라는 차원이다 [주4].
2025년에는 PLDI, SOSP, MICRO, ASE, 2026년에는 KDD, ICLR과 같은 대형 국제학술대회들이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국내에서 이렇게 좋은 학회에 참여할 기회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내 분야가 아니어도 plenary keynote 강연 들을 겸 등록해서 가고 싶고, 학생들도 많이 등록시켜 참여를 독려할 에정이다. 좋은 학회가 우리의 안방에서 열리는 덕에 쉽게 참가하게 되서 기쁘지만, 참가비만 백만달러 이상 규모의 학술대회를 운영하는 국제 학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내 학회 현황을 잠시 뒤돌아보았다.
[주1] "대학도서관 해외 학술지 오픈액세스(OA) 전환계약을 위한 기초 연구”
2023년 10월 16일, 서울대학교 김명환
[주3] 2024년 한국정보과학회 정기총회 자료 참조.
[주4] Job market의 역할에 관한 이전 블로그 포스팅: "왜 Job market에 나가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