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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Job Market에 나가야 하는지?Professional 2017. 7. 7. 10:07
아직 박사 졸업생을 10명 못 낸 교수이지만, 그래도 졸업해나가는 박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참 많다. 국내 박사로는 미국 job market에 바로 나가는게 영어, 인지도 등등의 문제로 쉽지 않아서 포닥을 일단 권해주지만, 포닥을 하고 나서는 꼭 job market에 나가보라고 권한다. 도대체 job market이란게 뭘까?
미국이라고 한정짓고 있지만, 절차나 결정 과정이 미국 대학과 유사하기 때문에 스위스의 ETH, EPFL, 그리고 아시아권의 HKUST, NUS 정도가 매년 봄에 벌어지는 Job Market(잡마켓)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등등의 기업도 물론 포함된다. 분야마다 잡마켓이 다르게 운영되기 때문에 내가 아는 전산분야에만 한해 적어본다. 우리나라 현실과는 아직 많이 달라서 끝에는 국내 교수 지원 방식과의 차이점을 정리해 넣었다.
우선 미국내 모든 대학들은 가을에 교수충원 공지를 CRA/IEEE/ACM 정도에 홍보한다. 그럼 그 공지를 보고 12월에서 1월초 사이에 교수충원 계획이 있는 대학에 CV, research statement, teaching statement와 3통 이상의 추천서를 보낸다. 그러면 1월에 대부분의 대학들이 인터뷰 후보군을 선정해서 빠르면 2월부터 5월초까지 인터뷰를 한다. 도대체 몇 명이나 할까? 스위스 ETH 전산학부의 경우 이번 봄 100명이 넘는 지원자 중에서 18명을 선별해 인터뷰했고, 그 중 2-4명에게 job offer를 주었다고 하고, 그 중 2명 정도가 오면 성공한 걸로 간주한다고 한다. 2명 뽑기 위해서 18명을 인터뷰했다는 얘기다.
구직을 위해 잡마켓이 형성된다는 얘기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장이 만들어지면서 경쟁이 생김을 뜻한다. 내가 박사 졸업할 때도 같은 연구실, 같은 지도 교수 밑에서 4명이 졸업해나갔다. 같은 연구실 동료끼리 외부에 나가서 실적과 교수 추천서로 경쟁을 하는 상황은 정말 정신적으로 힘들다. 누가 인터뷰 초청을 받고, 나는 못 받고 했을 때의 자존심 상함, 나는 받고 다른 친구는 못 받았을 때의 멋쩍음 등등. 잡마켓에서의 Ego-bruising을 경험해보면 멘탈갑까진 아니어도 많이 성숙해진다. 왜냐하면 인터뷰를 여러 군데에서 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좋은 얘기를 많이 듣기 때문이다. 내 연구를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어떻게 다른 분야와 연결되는지를 설명해주는 사람도 만난다. 자기 연구에 어떻게 쓸지를 생각해봤다며 맞냐고 질문해주는 사람도 만난다. 내 연구가 별로 재미없다, 쓸모없는 것 같다고 심하게 얘기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얘기를 해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기 때문에 어디서 어떤 인터뷰를 몇 번이나 하건 상관없이 박사 공부할 땐 몰랐던 뿌듯함이 생긴다. 내가 골라놓은 좋은 곳 서너군데서 인터뷰를 못하면 세상 끝날 것같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세상에 더 넓고 커져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이 생기는 느낌을 난 받았더랬다.
단지, 연구에 대한 feedback만을 받는게 아니다. 내 연구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를 해놓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들 중에서 나중에 학술대회 대회장을 하면서 나를 학술위원으로 초청해주기도 하는 등 학계에서 성장하는데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다. 최근 행해지는 대학 평가에는 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들어가기도 한다. 세계가 깜짝 놀랄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쓰면, 좋은 논문이니까 다들 알아서 찾아 읽겠지 하는 건 정말 소수 천재들에게만 해당된다. 불러주는데가 있으면 가고, 없으면 학술대회 열리는 동네에 아는 누구라도 찾아가서 세미나라도 해야한다. 비슷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하는데 학술대회 위원, 저널 편집위원이 개인적인 친분을 뛰어넘는 소통의 틀인데, 잡마켓이 그 기초가 되는 것이다. 해당 분야 연구자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최근 ETH에서 박사받고, 미국 유명대학의 교수로 간 친구 하나는 인터뷰를 18군데에서 했다고 했다. 버클리를 최근 졸업하고 CMU 교수로 간 친구도 10군데 이상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인터뷰를 잔뜩 하면서 자기 홍보를 해놓은 조교수들과 딱 한 군데 지원해서 자리잡고 시작하는 국내 교수들과는 시작부터 경쟁력이 떨어진다.
해서 나는 국내 박사이건, 외국 박사이건, 교직에 남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잡마켓에 들어가길 권한다. 세계 유수의 대학이나 연구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미국내 teaching college라도 다녀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대학에서는 어떻게 학과를 운영하고 있는지 배우는 것도 정말 평생 다시 오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하는 학교들 입장에서도 매년 10명 넘게 따끈따끈한 연구 발표를 보면서 교수들이 편히 공부하게 되니 이렇게 효율적일 수가 없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대학별로 충원 일정과 시기가 다 다르다. 언제 공지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지원자들을 아는 사람을 통해 미리 감을 잡고 있거나, 말 그대로 매일매일 hibrain이나 대학별 공지를 살펴볼 수 밖에 없는 큰 불편함이 있다. 우리 학부는 일년 내리 지원서를 받고 있기 때문에 기한이란게 애시당초 없어서 예외적인 상황이다. 국내 박사들이 국내 대학에 지원하는 경우는 한두군에 이상을 지원해서 인터뷰를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국내 박사들이 경쟁력이 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 학계 사람들이 그 연구 내용을 보고 읽힐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잡마켓을 어떻게 활성화시켜야할지 한번도 고민 안 했는데 이 글을 쓰고 보니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어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