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들어와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한 후, 전산학을 공부하며 가르쳐 온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우리가 어렸을 땐~" 이러면서 학부생들 못 알아듣는 구닥다리 옛날 얘기를 할 수 있을만큼 "경력"이 쌓였다.


돌이켜보면 학부생 때는 교수님들이 강의하시니까 그게 진리요, 참이요,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서보니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지를 깨닫는다.


나는 서울대 컴퓨터 공학부 7기이다. 당시엔 전자계산기 공학과라는 마땅치 않은 이름의 학과였다. 교수님이 6분 밖에 안 계셔서 수치해석은 인하대 김하진 교수님께서 해주셨고, 거의 모든 교수님들 수업을 매학기 들었다.  컴퓨터 아키텍쳐 강의는 당시 박사과정이셨던 전화숙 선배님께서 하셨고, 인공지능은 권혁철 선배님, 그래픽스는 신현식 교수님께서 전공 외 분야라서 공부하시면서 가르쳐주셨다.


박사한다고 미국 유학가서 수업을 들을 때 쉽지 않았다. 석사까지 하고 간 전공분야인 네트워크가 전혀 딴 세상 얘기 같았고, 괴델상을 수상하신 이론가 Neil Immerman 교수님에게 듣는 알고리즘 과목은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박사받고 취업하고 또 강단에 서서 학생들이 어떤 수업을 누구에게 듣나를 살펴보기 시작하니 나름 재밌는 세대별 특징이 보였다.  해서 우리 나라의 전산학 세대 구분을 한 번 해볼까 한다.


우선, 0세대는 학부 때 전산학을 하지 않고, 석박사에 전산학을 했던 세대다. 나의 학부시절, 교수님들이시다.


1세대인 나는 아무도 전산학을 학부 때 공부하지 않으셨던 교수님들께 배웠다. 소수의 과목은 그 분들의 전공이였지만, 대부분의 과목은 전공이 아니여서, 교수님들도 교과서만 보고 가르치실 수 밖에 없었다.


2세대는 그런 1세대가 가르치기 시작한 세대다. 하지만 2세대도 아쉬움이 있다. 1세대가 학부부터 전산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하기에는 국내 여건이 아직 많이 어려웠다. 국내 대부분의 대학들은 80년대에 들어서야 전산학과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박사 수급이 어려웠던 여건이 컸다고 생각된다. 서울대 전자계산기 공학과 10기 졸업생까지는 교수가 50%라는 통계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수긍이 가는 숫자였다.


3세대는 2세대와 뭐가 다르냐 하면, 교수들의 숫자가 늘어서 대부분의 전공과목을 전공을 하신 분들에게 배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 학과에 교수 수가 20명이 안되는 수준에서 20명이 넘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국내 연구 여건이 호전되서 BK21과 같은 지원사업 덕에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하는 교수들의 수가 많아졌고, 해외 학술대회도 석박사 과정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세대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후는 모두 3세대가 아닐까? 아니다. 전산학계의 마지막 숙제는 4세대 배출이다. 무엇이 부족할까? 커리큘럼이다. 카이스트 전산학부에는 현재 51명의 전임직 교원이 있다.  국내외 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며, 해당 분야를 이끌어나가고 계시는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인 부분이 있다. 한국정보과학회에서 정리한 전산학 분야 최우수 학술대회 리스트의 대부분의 학회에 우리 학부 교수님들께서 논문도 내고 TPC로 활동하고 계신다. 하지만 두어분야, 콕 찝어 얘기하자면 이론과 시스템 분야의 최우수 학술대회에는 국내 대학에서 내는 논문이 전무한 형편이다.  국내 과제 평가 관행, 국내 산업체 수요 부족 등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전산학계가 이제 3세대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4세대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전산학 전분야를 골고루 다루는 교과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내 최고이자 최대 규모인 우리 학교 전산학부에서 풀어야하는 숙제로, 조만간 4세대의 시작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미국 및 유럽에서의 전산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급속하게 발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에 컴퓨터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깨달은 각국이 50~60년대 많은 대학에 전산학부를 만들었고, 70년대 들어와서는 비행기 여행이 일반화되면서 각종 학술대회의  Face-to-face Technical Program Committee 미팅이 일반화되었고, 80년대 이후 인터넷과 IT 붐을 견인하였다.  60~70년대 부족한 전산학 교원 자리는 수학, 전기 및 전자공학 (특히 네트워크 분야), 산업공학 등의 관련 학과 교수들이 채웠다.  미국으로 치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0세대, 60년대까지가 1세대, 그 이후가 2세대 아닐까 생각한다.  구미 각국에 비해 30년쯤 늦게 시작한 학문 분야이지만,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더 잘 할 2, 3 세대를 보면서, 4세대 배출을 꿈꾸어 본다.


Posted by sb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