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엔 타대학/연구소와 하는 논문 작업이 많아서 유난히 정신이 없다.  아시아는 괜찮지만, 유럽과는 오후나 저녁이 편하고, 미국과는 오전.  가을에는 논문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와야 할텐데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쏟아져 나오려면 매일 밤샘에 주말도 없겠지 싶고, 안 나오면 몸은 덜 고되겠지만 과제 실적, 학생 졸업이 걱정이고. 써놓고 보니 뻔한 교수 일상사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논문 작업을 마치고 어딘가에 제출을 할 때가 되면 저자 순서를 정해야한다.  논문 저자로 참여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오해하는 부분도 제법 있다.  우선 논문의 아이디어만 낸 경우.  남들이 내 아이디어를 뺏어갔네 어쩌네 하는 얘기를 주변에서 한두번은 들어봤다.  난 아이디어를 뺏겼다는 얘기에 쉽게 수긍이 안 간다.  논문을 어딘가에 제출했다가 리젝을 먹었는데, 그 논문 심사에 참여했던 사람이 얼마 있다가 비슷한 내용으로 논문을 냈다면 의심해야 한다.  이럴 경우는 논문 제출 일자 등의 기록이 확실하게 있기 때문에 저널 편집장이나 학술대회장에게 어필하면 된다.  실제 있었던  경우라고 들었다.  반면, 여럿이 얘기를 하다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누군가 내 얘기를 듣고 논문을 썼다면 난 아이디어를 뺏겼다기 보다는 '아, 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넘치게 가진 사람이구나!' 자화자찬하며 기분좋게 생각할 것 같다.  난 왜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논문을 못 썼을까?  그 아이디어보다 더 재미난 연구를 하고 있어서이리라.  아이디어만 얘기해줬는데 다른 사람이 나보다 빨리 논문을 써서 낼 수 있었다면, 내 능력 밖의 연구 분야였을 수도 있고.  이런 경우에도 저자로 포함시켜줘야 할까? 노.  말만 하고 다니면 되는건 아니지 않을까?  물론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논문을 쓴 저자가 너무 감사해하고, 부득부득 우기면 고민을 해볼 수는 있겠다.


허나, 저자로 참여할 때는 책임이 따른다.  그 논문의 내용 전체에 책임을 같이 지겠다는 뜻이 된다.  다른 공동 저자들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만 맘 편하게 참여할 수 있다.  논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확신이 서지 않거나, 내가 한 기여가 크지 않다고 생각될 때 저자 명단에서 빼달라고 하는 일이 종종 있는 이유다.


논문을 제출하고 나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때부터가 또 새로운 시작이다.  논문이 승인되면 최종 출판본에 리뷰어들이 수정 요구한 내용을 다 담아야한다.  학술대회의 경우 리뷰가 몇 달, 저널은 1년이 넘게도 걸린다.  추가 실험 결과를 리뷰어가 요구하는 경우는 없지만 (제출된 내용만으로 당락을 결정해야 하니까), 저자들이 원하면 가능하기도 하다.  학술대회 논문이면 최종본 제출 이후부턴 학술대회 전까지 발표자료를 준비해야한다.  물론 발표도 해야한다.  발표가 끝나고 나서는 앞으로 논문을 읽고 질문을 해 올 경우를 대비해서 실험 자료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리해놔야한다.


제 1 저자는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증명을 하고, 논문을 썼다고 해도 리뷰를 받고 나서의 후속 작업도 만만치 않다.  논문이 되면 다행이지만, 떨어지면 수정보완해서 다른 곳에 제출해야한다.  한두달 사이에 끝날 일이 아니다.


만약 제 1 저자가 석사생이면 복잡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운이 좋아서 논문게재 승인받고 크게 수정하지 않고도 최종본을 낼 수 있어도, 학회 일정이 졸업 후가 되면 어떻게 해야할까?  해외에서 열리는 학회라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졸업한 후에는 아무리 과제 연구원이였다고 해도 국내 과제 규정으로는 해외 출장비를 지원해줄 수가 없다.  출장비를 큰 맘먹고 자비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학회에 따라 50만원이 넘기도 하는 등록비는 큰 부담이다.  또 신입사원이 해외 출장을 핑게로 입사한 지 얼마 안되서 1주일씩 자리를 비우기도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발표자료 준비도 어렵지만 석사 논문 발표와 많이 겹칠테니 그나마 덜 걱정되는 점이다.


내 경우에는, 대개 석사생들이 쓴 논문들은 주로 큰 학회에 co-loc된 워크샵으로 많이 나갔고, 졸업 전에 발표까지 마무리지어졌더랬다.  발표가 졸업 후인 학회에 제출해야 될 경우에는 고민이 컸다.  저자 중 누군가는 가서 발표를 해야하는데, 교수인 내가 꼭 갈 수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해서 그럴 경우에는 연구실 박사 과정을 논문 작업에 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참여 박사가 암 것도 안 하고 논문에 이름만 들어가네 생각할 수 있지만, 같이 미팅하면서 feedback 주고, 논문 읽어봐주고, 수정도 해주고, 급하면 많이 써주기도 한다. 졸업을 얼마 안 남긴 박사에게 해외 출장은 꼭 기쁜 일만은 아닐 수도 있고.  공동 저자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경우다.


만약, 논문이 떨어지면 수정보완해서 딴 곳으로 보내야하는데 제 1 저자가 졸업해서 산업체 취직했고, 논문에 시간 들일 수 없는 상황이면 제 1 저자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 제 1 저자는 그렇다 치자.  나머지 저자들은 어떻게 이름이 들어가야 할까?  만약에 처음에 혼자 시작하지 않고 여럿이 같이 시작했으면 누가 제 1 저자가 되어야 할까?  학문적인 기여도가 비슷할 경우에는 가나다순으로 하고 이력서 등에는 명시하면 된다.  비록 논문에는 제 2, 제 3 저자로 올라가 있지만, 공동 제 1 저자로 역할을 다 했다고 지도교수도 추천서에 잊지 말고 적어 넣고.


비슷하지 않을 경우에는 기여도 순서대로 들어가면 된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교수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교신 저자를 정해서 출판해야하는 저널 위주의 분야들과는 달리 전산 분야 학술대회나 저널에는 일단 교신 저자의 개념이 없다.  순서는 학교마다 팀마다 사람마다 논문마다 조금씩 다르게 정하는 것 같다.  교수들의 경우에는 학생들 저자들 순서와는 반대로 기여도가 큰 순서대로 끝에서부터 넣기도 하고, 가나다 순으로 하기도 한다.  미국 어느 유수 대학의 교수 왈, [학생 순서]+[교수 순서] (제일 흔한 경우) 또는 [학생 순서]+[교수 순서 반대].  이론분야에서는 [다같이 이름순], 특별히 나중에 조인했을 때 [[학생+지도교수], [학생+지도교수]] 이렇게 한다고 한다.  UCSD에서는 제일 일 많이 한 교수 이름을 맨 뒤로 보내기 때문에 제일 "있어 보여서" 서로 맨 뒤로 가려고 엎치락뒤치락한다고 농담을 해줬던 기억도 있다.


헌데 국내 과제 실적으로는 교신 저자인지가 굉장히 중요한 요건이 되서, 대개의 교수들이 마지막 자리에 들어가길 원한다.  이렇게 연구 이외의 이유로 저자 순서를 고민해야되면 즐겁게 연구하기가 힘들어진다.  사소해보이는 사안이지만, 국내 교수들 사이의 협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비슷한 기여도로 가나다 순으로 이름을 넣었을 경우에는 섭섭할 수 있으니까.


어떤 저자 순서이건 제 1 저자의 역할은 막중하다.  박사 졸업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박사 논문 내용에 관한 이멜이 오면, 지도교수님께서 내게 답하라고 전달해주시곤 했었다.  엊그제에도 몇 년 전에 졸업한 석사생의 논문에 관련된 자료를 달라는 이멜이 왔더랬다.  논문에 있는 알고리즘을 구현한 코드를 달라는 이멜이였다.  졸업생에게 전달했는데 답신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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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먹는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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