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말이면 우리 학교에서는 차기년도 대학원생 선발을 위한 입시가 치뤄진다. 1차 서류 전형, 2차 면접, 3차 입시 사정 회의를 거쳐서 석박사 신입생들을 선발하고, 우리 과의 경우에는 그 다음해 입학 후 랩소개 및 교수 면담을 거쳐서 지도교수를 결정하게 된다. 매년 100-200건이 넘는 서류 전형에 사나흘에 걸친 면접에서는 학부 때 착실하게 기본을 다졌는지, 그리고 입학 후 랩소개 및 개별 면담을 할 때도 학생들 개개인의 능력을 살펴보느라 바쁜다.  내가 원하는 대학원생 상은  나름 뚜렷한데 막상 입시 및 랩 소개 때는 얘기할 기회가 없어서 한 번 정리보기로 한다.

우선 학부 때 전산과 기초를 다지는 과목들을 충실히 들었가 중요하다. 이산 수학, 확률과 통계, 알고리즘, 오토마타 외에도 수학, 통계 관련 기초 과목, 그리고 시스템 프로그래밍, 컴파일러, 프로그래밍 언어, 컴퓨터 구조, 운영체제,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인공지능, 그래픽스 정도는 기초로 들어주고, 그 외의 심화 과목을 들었나 확인한다.

그 과목들을 4년에 들었는지, 5-6년씩 끌면서 쉬엄쉬엄 들었는지도 확인한다. 요즘 학생들은 예전에 내가 대학 졸업할 때와는 달리 졸업 후 취직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80년대 고속팽창 경제발전 시대와 비교가 되지 않겠지. 우리 땐 학점 상관없이 취업 걱정하는 학생이 없었더랬으니까. 그래서 좀 쉬엄쉬엄 하면서 학점 관리를 하는 학생들도 많고, 재수강으로 학점 보정을 시도하는 학생들도 많다. 헌데 문제는 1학기 18학점 들으며 4년 졸업한 경우와, 1학기에 12-14학점씩 들으며 천천히 졸업한 경우는 공부 강도에 대한 적응력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대학원으로 진학하면 학부 때보다 공부에 대한 집중 및 강도가 한 단계 높아진다. 한 학기 들어야하는 학점 수가 반으로 주는데도 삶이 녹녹치 않다. 왜? 더이상 교과서 진도 맞춰 공부하고, 책에 있는 연습문제 풀며 시험준비할 수 없고, 대충 정해진 내용과 관련된 논문들을 모아서 읽으면서 잘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어디서든지 뒤져내서 스스로 배워야하고, 학기말 프로젝트는 설계, 구현, 보고서 작성까지 도대체 정해져있는게 없기 십상이라 '자율성'이 크게 강조되기 시작한다. 기초가 잘 다져 있어야 될 뿐만 아니라, '고강도' 연구에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남들 4년 동안 130-140학점 받아 졸업하는 동안, 5-6년 걸쳐서 140-150 학점 듣고 올라오게 되면 대학원 생활에 적응이 될지 걱정이 좀 된다[각주:1].

그 다음으로는 영어 성적을 본다. 자기가 고안해낸 새로운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방법이 논문이고 특허이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로 논문을 써야하는 건 대학원생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영어로 논문을 잘 쓰는건 영어로 된 논문을 읽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그래도 대학원 왔으니 쓰겠다는 의지는 있는 건데, 영어 성적이 나쁘다면 아직 준비가 좀 미비한 것이다. 영어 성적이 TOEIC 900점/TOEFL IBT 100점 정도는 되야하지 않을까? TOEIC 시험이 지난 몇 년간 많이 어려워져서 900점이 예전처럼 쉽지는 않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900점이면 되고 890점이면 안 된다는게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 요구하는 입학 요건이 너무 낮다는 뜻이다. 그 입학 요건에 겨우 맞춰 진학하면 전부 영어로 되어 있는 강의 자료 소화도 힘들고, 영어로 논문을 쓰겠다고 우기면 지도교수는 정말 슬퍼진다. 지도교수가 영어 선생은 아닌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학부 나온 학생들에게 요건이 너무 높지 않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원에서 하는 연구는 우리나라에서만 경쟁하고 쓰자고 하는게 아닌데 어쩌란 말이야. 영어 읽기, 액센트는 심하게 떠듬거리며 회화할 정도 되면, 논문쓰고 발표할만큼 되도록 대학원에서 키워주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학생과 얼마나 대화가 쉽게 되는지를 본다.  교수마다 지도하는 스타일이 다 다른데, 학생이 아무리 똑똑해도 지도교수와 소위 케미가 없으면 힘들다. 적게는 4년에서 많게는 6,7년씩 거의 매일 얼굴보고 살아야하는데 첫 눈에 반하는 거까지는 아니여도 웬지 이유없이 예쁜 학생이 반대인 학생보다는 교수에게도 편하고, 학생에게도 편하니까.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하는 건 소통의 의례이다.  아무리 연구를 잘 해도, 왜 그런 연구를 했고, 연구 결과가 어디에 어떻게 널리 쓰일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 설득하지 못하면 연구 결과 자체를 인정받기 힘들다. 수학에서는 대가들이 풀기 힘든 문제들을 줄줄줄 늘어놨으니까 굳이 소통을 할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수학은 예외일 듯 싶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연구의 중요성 및 가치는 남들이 챙겨주기 보다는 스스로 잘 납득을 시켜야한다.  따라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잘 표현하는 학생과 같이 일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얼마 전 the New Yorker 2012.4.30. 이슈에 실린 "Get Rich U. There are no walls between Stanford and Silicon Valley. Should there be?" 기사 중 스탠포드 대학의 d.school (the Institute of Design) 과정에 관한 내용이 기억난다.  d.school은 developing world, sustainability, health and wellness, K-12 교육 네 분야에 집중하는 융합 과정으로 학생들은 "collaborative skills"과 다른 학생들의 평가에 의해 학점의 일부가 결정된다.  Stanford에서 추구하는 학생상은 "T-shaped" 학생으로 한 분야에 전문가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분야도 폭넓게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데, 소통의 기술이 강조된다.  조용히 구석에서 시키는 일만 하겠습니다 하는 자세의 학생보다는 풀고 싶은 문제가 많고, 궁금한 게 넘치고, 이런 얘기를 같이 나눌 동료들이 마구마구 고픈 학생이 눈에 쏙 들어오지 않겠는가.


모든 학생들이 대학원에 똑같이 준비해서 오진 않는다.  어떤 학생들은 학부 때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학점이 안 좋기도 하고,  몇몇 과목을 못 들었기도 하고, 영어 성적이 모자라기도 한다.  관련 업체 병특을 가거나, 졸업 연구, 개별 연구, URP, 인턴쉽을 통해서 보완하기도 하고, 대학원 과목 한두개 열심히 듣고 좋은 성적을 받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준비된 모습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원에 와서 지금껏 못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만회하겠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나.


대학원생 선발은 세상에 그득그득 쌓여있는 문제들을 같이 풀 동료를 찾는 과정이다.  가슴 설레고 떨리는 만남의 장이다.  올 8월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의 지원자들을 기대해본다!


  1. 물론 과목마다 숙제 및 과제에 대한 강도차를 고려하긴 해야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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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먹는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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