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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부생 지도
    Professional 2013. 3. 27. 14:38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학부 과목인지 대학원생 과목이였는지도 가물가물한데 여하튼 보강을 해야했다.  학생들에게 월요일 10시 반 괜찮냐고 물었더니 10명이 넘는 과목이였는데 다들 괜찮다고 하길래 그럼 그 때 하자 하고 강의를 마쳤다.  보강 시간에 가봤더니 아무도 안 와 있길래, 놀라서 조교를 찾았더니, 조교 왈, 다들 밤 10시 반으로 생각했을 거라는 것이다! 밤 10시반!!!  보통 요일 오전 10시 반에 다른 수업과 겹치지 않는게 참 희한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밤 10시 반으로 이해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도 기가 막혀 교수 식당에서 툴툴거렸던 것 같다.  얼핏 들으신 전자과 김충기 교수님께서 "문 교수님, 그게 정말 우리 학교 학생들을 잘 표현하는 에피소드 같습니다!  좋은 경험하셨네요." 하시면서 껄껄 웃으셨더랬다.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듣고 싶은 수업 들으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나갈 수 있는 거"라고 대답한 학생들이 제법 된다. 학점 좋게 받으려고 바둥거리지 않으면서 맘맞는 친구들 몇몇이랑 '어,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다' 싶은게 있으면 뚝딱뚝딱 며칠 밤새서 해보고, 그러느라 숙제도 밀리고, 출석도 펑크나고, 퀴즈를 뭉개도 졸업에 아주 크게는 지장없는 그런 생활이 좋았단다.  (이런 게 '학풍' 아닐까?)

    하고 싶은게 있다는게 기특하고, 그걸 실제로 만들어 볼 재주가 있다는 건 더 기특한데, 사정을 알 바 없는 교수들은 얼굴 안 보이면 걱정되고, 숙제 못내면 뭔 일 있나 신경쓰이고, 플젝 빵구내면 결국 호출을 해야한다.  사정을 알게 되면 수업을 제낄만큼 재미난 일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인 강의, 그렇지 않더라도 아쉬워라도 하는 강의를 해야하는 중압감에 시달리게 된다.

    학부 지도 학생과 만날 때는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고 있는지 얘기듣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  우선 내 나름 작성한 학부생 개인 소개서를 작성해달라고 한다. 가족 긴급 연락처, 현재 성적, 특기 사항, 병역 대책, 절친 연락처 (부모님께 연락할 정도보다는 약한 상황에서 긴급연락이 필요할 경우 대비)와 "기타 나에게 알려주고 싶은 점들 (애로사항 등등)"이 주요 항목이다.  소개서를 쓱 살펴보고 운동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멘탈이 건전하기 때문에 신경끈다.  팀내에서 실력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받는 스트레스에 고단한 몸이면 딴 생각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학점이 너무 좋은 학생은 괜히 찔러본다.  딴 거는 하나도 못 하고 사는거 아니냐 학교 다니기 재밌냐 등등.  제일 흔한 경우가 욕심껏 이것저것 벌려놨는데 수습이 안되서 바쁜 경우이다.  한두개 털고 정리하면 어떨까 의논해본다.  학점이 위태로와 보이는 학생은 연애하냐, 연애하다 잘 안 되냐, 동아리 임원이냐, 집에 무슨 일 있냐 등등.  능력있는 학생들도 많아서 회사 차려봤다, 차리려고 알아보고 있다, 차린 회사에서 받은 스카우트 제의 고려 중이다 뭐 이런 얘기도 종종 듣고 그러면 '멋있다, 잘 해봐라' 멘트도 해주고.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겐 대학 생활은 최루탄과 데모로 점철된 고난의 시간이였다.  같은 과 학우들이 경찰서에 끌려가고, 군대도 끌려가고, 수배도 받고 등등.  내가 직접 데모에 뛰어들어 돌을 던지지 않아도 시대적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 시절 대학을 다녔던 한 사촌 오빠는 1980년 가을 학기 휴교령 이후 지도교수를 처음 찾아갔을 때 바로 전공 얘기로 들어가셨더란다.  시대의 혼란을 잠시 덮어두고 학생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 교수가 멋있어 보였더랜다.

    시대에 따라 학생에 따라 원하는 지도교수 상이 다르고 바뀐다.  나름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고 일년에 수백명씩 입시 면접을 하다보면 통계에 기본한 관상쟁이에 근접해있어야 하는게 교수이지만, 그래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지 않는가.  자기 마음 속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를 질풍노도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학부생 꿍꿍이는 대략 난감이다.  그래서 학부생 만나서 사는 얘기 듣는게 더 재밌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학기 학부생 면담도 기대 만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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