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월화 이틀에 걸쳐 석사 논문 심사를 했다.  내 지도학생 2명과 다른 학생들 포함해서 5번.  심사를 하면서 학생들의 슬라이드를 보니 내용에 상관없이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지도학생들이 슬라이드를 만들어오면 그때부터 잔소리를 했지 어떻게 준비하라고 따로 정리해서 얘기해준 적이 없는 것 같다.  해서 부리나케 적어본다.


우선 발표 길이.  우리 학과에서는 석사 심사에 30분을 할당한다.  논문심사마다 3명의 교수가 필요한데,  내 학생 1명 졸업시키려면 내가 2명을 더 심사하게 일정이 짜여진다. 석사 심사를 한두시간씩 넉넉하게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얘기다.  30분 속에는 노트북 세팅, 발표, 교수들 질문, 그리고 최종 심사 논의가 다 포함되어야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15분 발표한다 생각하고 준비해와야 한다.


15분 발표에는 슬라이드가 몇 장이 필요할까?  내 계산으로는 25장이 넘으면 절대로 안된다.  15분짜리 발표에는 목차 필요없고, 각 단락 제목을 따로 슬라이드로 만들면 안된다.  15분은 정말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슬라이드를 넘기는 시간도 야껴야하니까.  각 슬라이드마다 한두마디 하다보면 쉽게 30초가 넘어간다.  따라서 15장 + 여유분으로 생각하면 25장 정도가 최대치 아닐까?


발표를 할 때는 듣는 청중과 눈을 맞춰야한다.  레이저 포이터를 쓰게 되면 청중에게 뒷통수를 자꾸 보여주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뒷통수만 보여주기도 한다.  레이저 포인터가 한 때는 유행했지만, 요즘 발표에서는 거의 금기시되고 있다.  왜? 빨간 점을 따라다니는게 너무 피곤하고 집중이 안되서. 따라서 레이저 포인터는 가능하면 쓰지말고,  꼭 써야만 하겠다면 투명노란색 박스나 원으로 하이라이트 애니메이션을 쓰도록 하자.  뒷통수를 보여주는 순간, 심사에서 좋은 인상은 포기하자.  난 정말 뒷통수가 싫다.  발표는 청중과의 소통이다.  청중 모두와 눈을 맞춘다 생각하고 똑바로 쳐다보며 발표하자.


슬라이드 제목. 흔히 하는 실수가 똑같은 제목을 여러 슬라이드에서 반복하는 경우이다.  슬라이드는 내가 가진 훌륭한 생각과 탁월한 결과를 광고하는 빌보드로 생각해야한다.  똑같은 제목을 반복함으로써 "부동산"을 낭비하면 안된다.  제목을 통해서도 더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청중에게 전달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슬라이드 제목에 대/소문자를 마음대로 섞어서 쓰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떤 단어는 대문자로 시작하고, 어떤 단어는 소문자로.  통일성있게 관사, 전치사를 빼고는 모두 대문자로 쓰기를 권한다.

 

폰트 크기.  발표 자료는 청중이 일정 거리를 두고 보는 자료이다.  논문처럼 빽빽하게 쓰면 안된다.  완전한 문장은 피하고, 짧게 정리해야한다.  "미생"에서 강하늘이 분한 "장백기"가 보고서 요약하면서 선배한테 지적받은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길게 늘어놓으면 안된다.  포인트를 짧게, 읽기 쉽게.  따라서 슬라이드에 들어가는 텍스트의 폰트는 적어도 14pt 이상이 되어야 한다.  자료 출처를 footnote처럼 명기하는게 아닌 이상.


국내 과제 발표에서는 딱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만을 가지고 슬라이드를 만들면 뭔가 없어 보이고, 정성이 안들어가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해서 국내 과제 발표에서는 슬라이드 가득 이런저런 표와 그림을 넣기도 하고, 내용을 빽빽이 채우기도 한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내에 파악할 수 있는 내용 이상이 들어가 있는 슬라이드는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쌍방의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석사 논문 심사는 국제학술대회 발표와 같이 딱 전달할 내용만 넣는게 효율적이다.


슬라이드에 들어가는 표와 그림은 논문에 들어간 표와 그림을 그대로 cut-and-paste 해오면 안된다.  X/Y축 레이블, 레전드의 크기도 더 키워야하고, 논문에는 흑백으로 프린트했을 때도 잘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패턴을 주로 썼지만, 슬라이드에서는 색을 쓸 수 있고, 시간상 실험 결과를 다 보여주지 못하니까 표나 그림에서도 꼭 필요한 데이터만 골라서 보여줘야한다.


슬라이드 제목과 내용은 주어와 술부의 느낌으로 구성되어야 청중이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아래의 예를 살펴보자.


제목: I/O Batching in Software Router

* A technique for sending and receiving packets in batches

* It is essential in high-throughput packet processing engines

* The batching causes increase in I/O latency


첫 불렛과 나머지 둘은 형태가 다르다.  뭐가 뭔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다음과 같이 고치면 "제목 (주어) + 내용 (술부)"의 형식으로 쉽게 읽힌다.


제목: I/O Batching in Software Router

* A technique for sending and receiving packets in batches

* Essential in high-throughput packet processing engines

* Causes increase in I/O latency


발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석사 논문이 무엇에 관한 것이냐는 problem statement이다.  절대 빠지면 안되는데 때론 발표자료에서 빠져있다.  자기 자신은 1년 넘게 연구해온 내용이라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남들은 모른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풀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얘기를 안하고 바로 내가 뭘했고, 뭘했고 늘어놓기를 시작한다.  Problem statement 슬라이드에는 무엇이 문제이고, 그것을 푸는데 challenge가 무엇인데, 나는 어떻게 해결하려고 한다는 내용이 꼭 들어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발표 1/3이 지나기 전에 나와야 한다.  연구 배경을 설명했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설명할 거니까 내가 푼 문제가 무엇인지는 그게 왜 중요한 문제인지는 청중이 알아내시오 식이면 곤란하다.


영어가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같은 말처럼 들리는 표현도 청중에게는 이게 뭥미? 하게 될 수 있다.  내 실적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결론의 예를 보자.


제목: Brining a NIC driver into Userspace

* Most kernel code is reusable

* A few parts are re-implemented for high performance

* Those parts are easily found from the kernel driver

* Our userspace driver works as fast as the state-of-the-art proprietary driver.


이게 논문의 결론/Contributions 슬라이드인데 맨 마지막 불렛만 빼고는 앞의 세 문장은 이게 논문에서의 실적인지 이미 알려진 내용인지 확실하지 않게 쓰여져있다.


제목: Brining a NIC driver into Userspace

*  We found that most kernel code is reusable

*  We emulated kernel-specific features with userspace features

*  We manually tuned only those few lines that are performance-critical.

* Our userspace driver works as fast as the state-of-the-art proprietary driver.


위와 같이 주어를 "We"로 바꾸면 이 논문에서 한 일이 무엇인지가 명쾌하게 요약된다.

내년 석사심사부터는 연구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해봤다.


P.S.  예제들은 올해 석사 논문 심사를 받은 마상욱, 이근홍 군의 발표자료에서 가져왔습니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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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먹는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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