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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비정규직 포닥: 왜 하나?Professional 2017. 6. 27. 20:00
사회 전체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화두이다. 학계에서 제일 대표적인 비정규직이 일명 포닥으로 불리는 post-doc이다. 분야마다 포닥의 현황이 크게 차이가 나서 일단 전산 분야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내가 90년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시절에는 박사 졸업생들이 바로 취직을 해서 나갔다. 포닥은 외국 박사들 뿐이였다. 당시 이태리, 스위스나 영국의 경우, 국가에서 대학원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대신, 기한이 3년으로 정해져있었다. 아무리 천재에 날고 긴다고 해도, 미국 대학엥서 4-6년 걸리는 박사 과정을 유럽에서 3년만에 마치면, 논문 실적이나 연구 깊이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로 진출하고 싶은 유럽 박사들이 미국에 와서 포닥을 하였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 IT 버블이 잠시 꺼지면서 배출된 박사들을 학계에서 수용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NSF가 긴급 재원을 풀어서 박사 졸업생들을 포닥으로 학계에서 수용했다. 이때 제기된 문제가, 일단 포닥을 사람들이 하기 시작하면 포닥을 안 하는 사람들을 채용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신임교원 채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포닥을 한 사람이 아무래도 실적이 갓 박사를 받은 사람보다 낫기 때문에 포닥을 뽑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인력 시장에서 포닥이 사라질 수가 없게 된다. 포닥의 기간이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거나 0이 되기 힘들어진다.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전산 분야 포닥은 십년 지난 지금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 곳을 정해놓고 0번째 안식년처럼 다른 곳에 가서 지도교수로부터 독립한 연구 주제를 준비하고, 강의 준비를 하면서 1년을 보내고 부임을 하는게 유행이 되었다.
90년대 생명과학/공학 분야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더랬다. 그 분야에서는 포닥을 최소한 5-6년 연봉 3만~5만불 받으면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좋은 실적을 쌓으면 비로소 교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전산 분야에서는 90년대에도 초임이 7만불 이상 했더래서 비정규직에 그 박봉을 가지고 어떻게 5-6년 버티는지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최근 네이처인지 사이언스에 생명과학 원로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미국 NIH 지원의 연구비가 지금처럼 계속 증가할 수 없기 때문에 5년 이상 포닥이 넘쳐나는 과포화 상태의 학계가 큰 조정 국면에 들어가야한다는 얘기다.
외국은 그렇다치고, 국내 박사들은 포닥을 왜 해야할까? 포닥은 학계로 진출하고 싶은 사람들이 위에서처럼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하게 된다. 산업계로 가고 싶은 사람은 절대 할 필요가 없다. 어디로 가서 해야할까? 당연히 논문 실적이 잘 나올 곳으로 가야한다. 내 지도교수가 세계 최고의 연구자라고 하더라도 학문적 다양성, 새로운 연구자들과의 네트워킹 등등을 고려해서 다른 대학으로 옮기는 것을 추천한다. 학계에 자리를 잡으려면 추천서가 굉장히 중요한데, 포닥을 하면서 추천서 한 장이 더 추가된다는게 무척 중요하다. 지도교수와 포닥을 하면 다른 곳에 가질 못해서 그랬나보다 하는 암묵의 마이너스 페널티를 감수해야한다. 지도교수가 추천서에 아무리 뭐라고 써도 말이다. 따라서 지도교수는 박사 졸업예정자가 학계로 가고 싶다고 얘기하는 순간부터, 비슷한 분야의 누가 대형과제를 시작해서 포닥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학생에게 바로바로 알려줘야한다.
만약, 지도교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고, 포닥을 자기와 하라고 잡으신다면 이 블로그를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