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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C 2009 TPC 미팅 참석 후기
    Professional 2009. 7. 17. 01:30


    지난 금요일에는 독일 베를린의 Deutsche Lab에서 열린 ACM SIGCOMM Internet Measurement Conference의 Technical Program (TPC) 미팅에 다녀왔다.

    TPC 미팅이라 함은 학술대회에 제출된 논문을 TPC 멤버들이 읽어보고 리뷰를 한 후, 한 곳에 모여서 논문의 당락을 결정하는 회의이다. 전산학의 모든 학회가 TPC 미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논문접수가 끝나면 학술대회장이 위원들에게 리뷰할 논문을 할당하고, 첫단계 리뷰가 끝나면 위원들끼리 리뷰 웹사이트에 올라온 다른 위원들의 리뷰를 읽어보고 논문의 당락에 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논문의 당락은 만장일치로 결정하는데, 위원들간의 의견 격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추가 리뷰를 요청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학술대회장이 중재를 하게 된다.  이 모든 결정을 웹사이트를 통해서 하는게 대부분의 학회이나, 때로는 전화 회의를 하기도 한다.  이 결정을 웹사이트나 전화 회의를 통해 하지 않고 학술대회위원들이 단 하루의 TPC 미팅을 위해 전세계에서 몰려올 정도의 수고를 한다는 뜻은 TPC 미팅을 통해 좀더 흥미롭고, 좋은 내용을 결정해야할 정도로 제출되는 논문의 수준이 높아야된다는 뜻이다.

    내가 학술대회 위원으로 활동해본 학술대회 중 TPC 미팅을 하는 학회는 SIGCOMM, IMC, NSDI, INFOCOM 정도밖에 없다.  SIGCOMM, IMC, NSDI의 경우에는 학술위원 초청을 할 때 TPC 미팅 참석을 전제로 한다.  전화 회의를 하는 경우도 비록 직접 모이지는 않아도 위원들끼리 전화로라도 의견 개진을 해야하기 때문에 논문리뷰에 신경을 쓰게 되서 전화 회의조차 하지 않는 학회보다 깐깐하기 십상이다.  COMSNET 2009의 경우 TPC가 수십명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학술대회장이 call-in할 수 있는 국제전화번호를 6개나 준비하고,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위원들이 편한 시간에 맞출 수 있도록 토론할 논문의 순서를 미리 준비해놓는등 신경을 많이 썼더랬다. 전화 회의를 한 다른 학술대회로는 ROADS Workshop 2008, ICNP 2008 등이 기억에 남는다.  전화 회의는 아시아권에 있는 내게는 절대 불리하다. 대개의 TPC들이 미국과 유럽에 있기 때문에 나는 대개 밤 12시에서 새벽 3~4시가 할당된다. 어떤 전화 회의에서 한 친구는 자기 시간으로 밤 11시에 논문 하나 토론하고, 다시 새벽 5시에 토론하게 되었는데도 꼬박 성실하게 참여하는 걸 보고 감동받기도 했지만, 내 몸이 고된 건  어쩔 수 없다.

    언제였는지 처음 TPC 미팅을 갔을 때다. 아마도 INFOCOM 미팅으로 기억하는데 INFOCOM TPC 미팅은 일단 TPC 초청을 할 때 미팅에 참석할 것을 전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이 실은 가물가물) TPC 위원들이 반 정도만 참석했더랬다. 주제별로 소그룹으로 나눠져서 토론을 했는데 참석한 위원들중 아무도 읽지 않은 논문에 대해서 참석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만을 가지고 결정을 하려니 쉽지않았다.  특히 리뷰가 자세하지 않거나 구체적으로 쓰여져 있지 않은 경우는 더 했다. INFOCOM의 규모가 너무 커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줄은 짐작했지만, 그 땐 처음 해보는 TPC 미팅이라서 별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고 답답해하다가 말았다.

    그 다음에는 IMC TPC 미팅을 갔을 때였던가. 거의 모든 TPC들이 다 참석해서 하루종일 회의를 했는데 내가 리뷰한 논문이 토론될 때만 정신을 차리고 있고, 내게 할당된 논문 이외의 논문은 읽어보거나 리뷰조차 살펴볼 여유가 없었더랬다. 미팅 도중에 나한테 추가 리뷰를 부탁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해당 논문을 그 자리에서 급하게 읽고 의견을 얘기해야 했다. 그 땐 할당된 논문 이외에 추가로 논문을 읽고, 또 거기에 붙은 리뷰까지 읽어가면서 토론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몇몇이 무척 부러웠더랬다.

    지금까지 해본 TPC 중에서 제일 힘들었던게 NSDI TPC였다. 일단 내가 NSDI에 논문을 내본적도 없고 참석해본 적도 한 번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동향을 가늠하기가 힘들었고, 제출된 논문들의 related work를 내가 새로 챙겨봐야하는게 굉장히 많았다. 또한 논문 길이가 14페이지나 되는데다가 TPC 위원수가 작아서 20~25개씩 논문을 할당받은 통에 그냥 절대적인 양이 너무너무 많았더랬다. 거기다가 미팅 전에 내게 할당된 논문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까지 읽어보고 가려는데, 리뷰들은 또 왜 그렇게 긴지. 14페이지 논문에 리뷰만 서너페이지씩 되는 것도 있었다. 미팅에선 설전이 오갈 수도 있기 때문에 단단하게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 TPC 미팅에서 어느 정도로 예전 연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고, 제출된 논문의 장단점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설파하느냐를 가지고 다른 TPC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 있는 TPC들 중에서 다음 학술대회장이 나오기도 하고, 또 좋은 인상으로 대회장에 선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IMC TPC 미팅에서는 오후 늦은 시간에 내가 맡은 논문을 토론하게 되서 지쳤다는 티를 좀 내려고 한숨을 쉬면서 "This paper did some analysis"하고 운을 떼자 다른 TPC 멤버들이 깔깔대며 "and some experiment and some evaluation"하고 "some"이라는 불특정한 수식어를 가지고 웃어댔는데, 심각하게 토론할 때는 이렇게 어정쩡한 논리는 안된다는 뜻이다.

    TPC 미팅은 전산학 고유의 문화로 끼리끼리 마피아라는 얘기도 듣고, 그럴 거까지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다고 정크논문이 안 들어가냐 주장할 수도 있지만, 미팅에 참석해보면 위원들이 나름대로 참 열심히 리뷰를 했구나는 생각이 든다. 이 분야에서 나름대로 최고라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리뷰했는데 그 결정이 100% 완벽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리 낙담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술대회의 질은 논문의 질이 결정하지만, 좋은 논문이 발표되기까지는 리뷰어들의 노력이 결정적인 것이다. 미팅을 따로 할 정도의 정성을 들이는데 논문의 질이 나쁠리가 없지 않겠는가.

    행복한 고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내년 초까지 2개의 TPC 미팅을 더 소화해야 한다. 둘다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라 출장비도 만만치 않고, 14 페이지짜리 20~30개씩 소화할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논문을 읽어대면 내가 몰랐던 분야에 대해 지식도 쌓이고, 또 그게 내 연구에도 도움이 되니까 불평은 없다.  어느 학회든 고생한 TPC들에게 수고료는 못주지만, 대신 미팅 후 그 동네에서 잘 나가는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해준다.  뉴욕에서의 맛난 저녁을 꿈꾸며 버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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