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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CI와 전산학, 그리고 영년직 심사
    Professional 2009. 4. 7. 13:03


    지난 주초였나보다.  예전에 영국 캠브리지의 인텔 연구소에서 만났던 친구가 이멜을 보내왔다.  작년 서울에서 열렸던  Conference for Future Internet에서 발표했던 4장짜리 extended abstract를 어떻게 뒤져냈는지 읽고는 자기도 비슷한 거 한다며 같이 해보자고 연락을 한 것이다.  우리야 계속 그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손이 딸려서 그 친구 밑으로 학생들이 여럿 있다기에 같이 해볼까 궁리하던 중에 한국학술진흥재단(KRF)의 글로벌 네트워크 연구사업 공지를 보게 되었다.  살펴보니 우리가 하려는 협력 형태에 잘 맞는 것 같아서 신청을 해보려고 하니 하나 걸리는게 있었다.  국내 연구자 연구 업적.  2006년 1월 1일 이후 SCI급 학술지 5편.

    전산 분야에서는 SCI급 학술지는 외국 대학에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지난 달에 우리 학과를 다녀간 Microsoft Research India의 Ramachandran Ramjee 박사는 "irrelevant"라고 얘기했고, CMU 전산학과 학과장이신 Peter Lee 교수는 딱 잘라서 영년직 교수 심사에서 저널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독일 Max Planck Institute for Software Systems의 Paul Francis 박사는 자기는 저널이 1편밖에 없다면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해주었다.  내가 SCI 저널 논문이 없어서 국내 과제 신청을 못할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나는 학술지 논문을 못쓰는게 아니다.  외국의 유명하고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연구자들이 저널 논문 안쓰고 연구에 매진하는데, 나도 그만큼 하려면 1초도 낭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일단은 학술대회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우리 분야에서 저널은 학술대회 쓰고 거기에 미처 다 싣지 못한 내용을 좀더 보강해서 내거나 하는데 연구 내용상 더 붙일게 없으면 저널에 안 내기도 한다.  더 보탤 내용이 있는 연구 내용이면 작업 좀 더 해서 좋은 저널에 내고, 그렇지 않으면 학술대회 논문으로 일을 마무리짓는다.

    이런 전산학 분야의 현실을 학술진흥재단에서는 아직 반영을 못하고 있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우리 학과에서는 지난 수년간 많은 신진 연구 인력을 보충했는데, 곧 나와 똑같은 벽에 부딪힐텐데, 어떡하나 걱정이 앞선다.  근데 이 SCI 문제가 단순히 과제 신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수 승진 심사에서도 적용된다는게 문제다.  승진 심사 내용이야 대외비이기 때문에 누가 무슨 근거로 어떻게 판단을 했는지야 알 수 없지만, 국가 과학 정책의 선봉에 있는 학술진흥재단 및 과학재단에서 속수무책인데 하물며 다른 곳은 어떠랴.

    그나마 BK21에서는 전산학의 경우 IEEE, ACM, USENIX 학회가 주관하고, 논문 게재율이 30% 이하이며, 50편 이상 게재되는 경우는 학술지급으로 인정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근데 이것 또한 실정을 모르는 얘기다.  ACM 및 USENIX 주관 학회들은 대개 single track으로 3일.  해서 발표 논문 수가 30~35편을 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숫자에 급급해졌을까?  누가 어떤 연구를 했는데, 그 연구가 좋더라 나쁘더라를 이렇게 숫자로밖에 판단하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가 됐을까?  내력이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바꿔나가야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좋은 아이디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5년 전에 귀국할 때 지도교수님를 찾아가 SCI 얘기를 하고 걱정을 했더니, 지도교수님께서 쓰신 추천서의 일부를 보여주셨다.  미국에서도 예전에는 학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 때문에 단대나 대학 차원의 인사심의위원회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어서 National Research Council 등에서 만든 자료를 아래처럼 꼭 붙여서 낸다고.

    [1] "If I had to find any potential issue with Professor XXX's tenure case, journal publications would be the only possible issue.  However, I would note that the conferences in which xxx has published are as
    selective, and in some cases more so, than most journals.  Thus, many of her top conference papers are undoubtedly of the caliber of journal papers.  I am sure you are also aware that the best conference
    proceedings in Computer Science are often more heavily read and cited than journals." [A,B]

    [A] A 1994 report from the Nation Research Council notes, "A substantial majority of respondents to the CRA-CSTB survey of ECSE faculty preferred conferences as the means of dissemination by which to achieve maximum intellecutal impact; many fewer preferred journals," from Academic Careers for Experimental Computer Scientists and Engineers.  National Research Council, National Academy Press, Washington, D.C., 1994.

    [B] In its study of publication and publication dissemination in computer science, the Research Libraries Group notes, "In computer science, conferences are the venue for presenting important new research, and competition for the opportunity to do so intense.  In fact, presenting a paper at the more prestigious conferences is preferred to publication in a leading journal" [from C. Gould, K. Pearce, "Information Needs in the Sciences: An Assessment, report prepared for the Program for Research Information Management, Resaerch Libraries Group, Inc. Mountain View, CA, pp.71]. Cited in footnote [A] above.

    작년에 안식년을 가 있을 때도 이 얘기가 나왔었는데 거기 교수들은 Computing Research Association에서 발간하는 Computing Research Review에 1999년 David Patterson (U. of California Berkeley), Lawrence Snyder (U. of Washington), Jeffrey Ullman (Stanford U.)가 작성한 "Best Practices Memo: Evaluating Computer Scientists and Engineers for Promotion and Tenure"에서 "publish in archival journals .... Obligating faculty to be evaluated by this traditional standard handicaps their careers and indirectly harms the field."라고 천명해놓은 이후로는 저널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저널에 논문내는게 handicap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해가 된다고 얘기해놨으니, 당연히 국가 과제 심사도 같은 기준으로 peer review되고.  이걸 읽고서 나는 그래도 국내 과제비를 따기 위해 저널 논문을 써야하는지, 외국 연구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학술대회 논문을 써야하는지.  결정이야 이미 내렸지만.  KRF, KOSEF 및 다른 정부 과제 심사 기준이 현실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어나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게 느껴진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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