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사흘간 2010년 석박사 면접시험이다. 우리 학과에는 매년 100명이 넘는 석사 지망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박사 지망생들까지 합해서 대개 사흘정도를 면접에 할당한다. 아침 9시부터 점심 1시간 빼고 6시까지 논스톱으로 매일 50명씩 사흘 면접을 치르고 나면 몸살이 날 정도다. 그래도 내년도 신입생들은 과연 어떤 학생들일까, 내 분야에 관심있어 하는 학생들도 있을까, 요새는 어떤 분야에 관심들이 있어 할까 궁금한게 많아서 입시가 고되기만 하지는 않다.
올해는 교수 2~3명이 한 방에서 10분에 한 명씩 면접을 했다. 학생이 일단 방에 들어오면 1분 가량 자기 소개를 하게 했다. 1차 서류전형에서 교수들이 서류를 살펴보기는 하지만 1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신상명세를 기억할 수 없으니 1분 안에 어느 학교 무슨 학과에서 공부했고, 군대는 다녀왔는지, 수상 경력, 인턴쉽, 외국어 연수, 기타 장기 사항을 얘기해줘야한다. 어떤 학생들은 군기가 팍~ 들어가서 우렁차게 또박또박 말을 하기도 하고, 누구는 교수들과 눈도 못 맞추고 수줍게 얘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오랜 외국 생활에 젖어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얘기하는 학생이 좋은데, 그게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고 해서 어떤 태도로 얘기하는 가는 실은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태도보다는 자기 소개의 내용인데, 장황하게 "존경하는 교수님들을 모시고 XXX에서 훌륭한 연구를 하고 싶다" 뭐 이런 얘기를 늘어놓으면 졸려워진다. 학부를 우리 학교 나오지 않은 학생은 면접하는 교수들을 잘 모를테니, "존경하는 교수님" 보다는 "존경할 교수님"이 맞는 얘기일테고, 내 입장에서는 사흘내리 반복해서 듣게되면 식상해진다. 대신 면접하는 사람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내용을 얘기해줘야한다. "이런이런 일을 해봤다, 관심이 있다" 그럼 면접하는 사람들이 왜 관심이 있느냐, 이런 내용도 들어봤느냐, 어떻게 문제를 풀었느냐라고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되고,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면접 시험의 장점은 학생의 관심 분야 및 수준에 맞춰서 질문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서 학생은 어떻게든 자신있는 분야로 질문을 유도해야하고, 면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학생의 잠재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준비해야한다. 제일 많이 듣는 대답 중 하나가 "배웠는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이다. 군대 다녀오기 전에 배운 과목 내용이면 3~4년 됐을 수도 있고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면접시험에서 진짜 묻고 싶은 것은 그 학생이 어느 정도의 논리력이 있고, 배운 내용의 중요성 및 효용가치를 잘 파악하고 있는가이다. 해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딱 잘라버리기보다는 그 과목에서 다뤘던 내용 중에 이런이런게 있는데 아마 거기 관련된 내용 같습니다만,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뭐 이 정도라도 얘기해주면 점수를 딴다. 또 그렇게 자기 생각을 되짚어보다보면 기억이 날 수도 있고.
어디에 가던지 말하는 상대를 잘 파악해야한다. 대학원 입시에서의 상대는 하루종일 10분간격으로 면접을 하느라 지쳐빠진 교수들이다. 들고 들어온 입시원서가 손에 쥐어지기 전까지는 이름이고, 출신 학교고, 학점이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자기 소개만 하릴없이 들어야하는 사람들이다. 총기 넘치는 자기 소개를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