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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한 공대 교수의 과제비 관리 애로점
    Professional 2006. 8. 30. 00:58

    종종 신문지상에서 공금유용 및 논문 도용 등의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교수들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정말 떳떳하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공대 교수이다보니 정부과제와 산업체 과제를 꾸준히 하게 되는데, 법대로 연구비를 쓰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법대로 연구비 쓰기가 힘들다고 해서 법대로 안써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불평이라도 한번 하고 지나가야겠다.

    지난 주에 오랫동안 구상해왔던 과제가 드디어 계약단계에 와서 예산을 짜기 시작하였는데 문제가 생겼다.  일단 산업체 과제인줄 알았던 과제가 정부과제의 형태로 옮겨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제마다 항목에 대한 요건이 달라서 똑같은 액수라도 인건비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과제, 장비 구입시에는 과제 종료와 같이 장비를 돌려주어야하는 조건이 있는 과제, 교수의 참여율에 대한 제약 등 규제가 천차만별이다.  문제는 과제가 언제 성사될지 모르고 얼마의 액수가 최종계약고가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에게 연구비만큼은 꾸준히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2년 이상의 장기 국가과제의 경우에는 연구비가 첫 해만 지나면 언제 얼마를 쓸 수 있다는 예상을 할 수 있지만, 1년 이하의 단기 과제의 경우에는 3월에 시작해야하는 과제가 5월에서야 겨우 계약 체결이 되고, 또 대부분의 과제가 11월, 12월까지 종료되어야하면 1월, 2월은 보릿고개가 될 수도 있다.  정부과제에서는 교수 수탁연구비 지출이 원칙적으로 안되기 때문에 교수들은 별 상관없다.  하지만 과제연구비에서 매달 얼마씩 생활비를 충당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보릿고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르시는 분들은 소위 랩비라는 것을 만들어서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지급된 연구비를 다시 긁어모은다고 알고 있겠지만, 이러한 연구비 보릿고개를 완충시켜줄 버퍼로 랩비가 사용된다.  하지만 법대로 랩비없이 살면 대책이 없는 것이다.  지난 주에 하루는 5시간이 넘게 예산을 짜고 났더니 정말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대규모 과제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예산을 법대로 쓰기가 힘들어서야.  더 큰 과제는 하려고 해도 힘들겠다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  과제비에서 세무사를 고용해서 과제 예산 관리를 해줄 수는 없을까?  인건비 풀링제는 언제나 시행될까?  미국처럼 과제끝나고도 1년정도 과제비 사용 유예기간을 줄 수는 없을까?

    올여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봄에 시작한 연구과제계약이 예상했던 날짜보다 한두달씩 밀리는 바람에 보릿고개를 겪고 있었는데, 마침 해외연수를 학생 한 명이 가게 되었다.  해외에 나가는 거야 신나고 좋은 일이지만 막상 가서 자리를 잡으려면 월세집 down payment다 뭐다 해서 제법 목돈 나갈데가 많았다.  기대했던 연구비를 제때 못 받아서 넉넉하게 환전해가지 못한 탓에 현지에서 첫 주급이 나오고 나서야 파산지경에서 빠져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 불법이라는 랩비라도 만들어서 봉급을 제때제때 줘야했나 생각을 안 해볼 수 없었다.   과제계약이 늦게라도 성사되서 소급해서 연구비를 지급받긴 했지만 해외에 나가서 얼마나 속이 탔을까.

    과제비는 공금이다.  법칙대로 써야한다.  인건비 풀링제, 잔여 과제비 사용 유예기간등만 추가되어도 과제비 관리에 쓰는 시간을 좀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아예 세무사가 과제비를 관리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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