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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트워크 분야에서의 TPC 활동 경험 (II)
    Professional 2011. 11. 16. 23:12
    [한국정보과학회 뉴스레터 제446호 2011년 11월 16일 전문가 광장 오피니언에 실었던 글을 퍼왔다.]

    전에 한국정보과학회 뉴스레터(제438호, 2011.9.21)에 전산학 네트워크 분야 학술대회 활동에 관해 적을 기회가 있었는데 적고보니 학술대회 활동을 어떻게 하나 방법론에 대해서는 적었지만 내 개인 경험담은 거의 적지 못했더랬다. 뉴스레터 편집위에서 컬럼쓸 기회를 또 주신다기에 이번에는 개인 경험을 위주로 정리를 해보기로 했다.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시행착오 등등으로 못했던 경험도 있는데 후배들은 내가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 많이 창피하지만 실패담도 적어보련다.

     

    처음 논문 리뷰를 해 본 건 박사과정 시절이였다. SIGCOMM 논문이였나? 지도교수님이 같이 리뷰하자고 하시면서 읽어보고 와서 같이 토론을 하자고 하셨다. 그 때 내가 리뷰했던 논문이 내 연구분야의 떠오르는 스타의 논문이였는데, 정말 잘 써서 흠잡을게 많지 않았다. 이런 논문을 내가 어떻게 감히 깎아내릴 수 있나 하는 경외심까지 있었다. 내가 리뷰를 적어갔는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교수님과 의논하면서 의견을 드렸던 것 같다. 다음에는 INFOCOM 논문을 한두개 맡았었는데, INFOCOM은 학술위원별로 책임져야하는 논문수가 많아서 학생들에게 논문 리뷰를 맡겼었다. 회사에서는 매니저가 위원이 되면 그룹멤버들이 리뷰를 도왔다. 그 대신 교수나 매니저 이름으로 리뷰한게 아니라 외부 리뷰어 자격으로 내 이름이 들어갔고, 학술대회 논문집 뒤에 첨부되는 리뷰어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는 보람에 신나서 했다. 처음으로 리뷰 형식에 맞춰 리뷰를 써야했을 때는 참 막막했다. 내가 처음으로 INFOCOM에 냈던 논문이 떨어졌을 때 리뷰 하나가 "I don't understand the paper." 이렇게 딱 한 줄 왔던 것에 분노해서 나는 절~~~대로 그렇게 성의없는 리뷰는 쓰지 말아야지 맘먹었는데도 평상시 연구실 세미나나 강의에서 질문이 많은 편이 아니였던 평범한 동양인 학생이였던 나로써는 리뷰할 때도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참 힘들었다.

     

    논문의 참고 문헌 중에서 내가 읽은게 많지 않아서 중요한 참고 문헌 두세개 챙겨서 읽고 논문 다시 읽고 하다보면 논문 하나 리뷰하는데 최소한 사흘은 걸렸다. 논문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서너시간, 관련 논문 찾아서 복사해서 챙겨보는데 하루 이틀 (90년 후반에는 아직 웹에 논문이 많지 않아서 도서실에 가서 논문을 뒤져봤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논문 한두번 더 읽어보고 리뷰쓰고. 다른 사람의 논문의 당락을 내가 결정한다는 사명감에 신중하게 리뷰하려고 노력했다.

     

    박사 졸업을 하고 나서 1-2년 지나서부터 학술대회 위원으로 초청되기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알고 나를 학술대회 위원으로 초청했을까 그 때는 정말 미스테리였다. 학술대회장을 스스로 몇 번 해 보고 나니 학술대회 위원으로 선정되는데 요술이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술대회장을 할 때는 예전에 TPC로 활동했던 사람들, 지난 2-3년간 해당 학술대회에 좋은 논문을 냈던 사람들, 학술대회에서 만났을 때 이런저런 주제에 대해서 명쾌한 의견을 잘 내던 사람들 등등을 기억해두었다가 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그러니까 박사 졸업 후 학술대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누는 토론 그리고 발표하는 논문을 통해 만들어진 내 평판이 학술대회 활동의 기반이 된다. 또한 박사 후 몇 년 동안은 몇몇 학회에 꾸준히 활동해서 한 분야에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매년 이 학회 저 학회 기웃거리기보다는 두서너개의 학회에 올인해서 논문도 내고, 참여도 꾸준히 해야 해당 분야를 이끌어나갈 신진인력으로 인정받는다.

     

    처음 학술대회 위원으로 초청받기 시작하던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노’를 못했다. 언제 또 나를 초청해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리뷰 일정이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노’를 못했다. 일년에 몇 개까지 해야 내 인지도가 유지될까 궁금했지만 누구에게 물어볼 생각도 못했고, 물어볼 여유도 없었다. 한 해 맡았던 논문 개수가 100개를 육박했던 시절 논문 리뷰 속도는 엄청 붙었다. 그러다 한 번은 결국 논문을 하나도 리뷰 못한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논문 리뷰 기간에 뭔가 급하게 해야하는 일이 터지면서 결국 리뷰를 손도 대지 못하고 말았다. 학술대회장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논문 리뷰 제 때 안하는 ‘black sheep’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Moshe Vardi가 Communications of the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CACM)에 전산 분야 학술대회 face-to-face technical program committee meeting에 대해 적으면서 일 년에 face-to-face 미팅을 하는 학술대회 활동은 하나만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피력했는데 내가 왜 진작에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땅을 치고 후회했다. 블랙 리스트라는 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입소문을 타고 퍼져서 되돌리기가 무척 힘들다. 그 이후로는 소규모 워크샵 위원은 학술대회장과 아주 친해서 꼭 도와주고 싶은 경우가 아니면, 거의 다 고사를 했고, 중요 학술대회만 일년에 두세개로 제한했는데 그래도 리뷰를 제 때 못하는 경우가 또 생겼다. 내 딴에는 일정을 다 고려해서 수락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늘 생겨서 시간을 못내게 되었다. 학술대회 논문 리뷰는 강의, 연구와는 별도의 일이라 대개 주말에 하게 되는데 중요 학술대회 리뷰를 맡으면 두세번의 주말에 놀지 못하고 하루 종일 논문만 읽게 된다. 일 년에 학술대회 서너개 활동하면 열 번 정도의 주말에 리뷰하느라 다른 일을 못하게 된다. 카이스트 부임 후 첫 4년 동안 주말조차 쉬지 못했던 제일 큰 원인 중 하나였다.

     

    올해부터는 중요 학술대회 위원은 일년에 딱 하나씩만 하기로 했다. 대신 저널 리뷰를 조금 더 많이 하기로 했다. 학술대회 위원 활동은 학술대회 홈피에 이름이 올라가고 Call for Papers에도 이름이 대개 포함되기 때문에 인지도를 쌓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저널 리뷰는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모르고 리뷰를 요청해오는 editor들에게만 감사의 말을 들을 뿐이다. 해서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저널 리뷰는 될 수 있으면 하지 말라는 조언도 여럿에게서 들었다. 내가 논문을 제출해본 저널이 두어개 밖에 안 되고, 저널 논문은 거의 챙겨보지 않기 때문에 저널에 논문을 내는게 시간 낭비이고, 리뷰를 왜 하냐고 말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래도 어느 수준의 논문들이 어떤 저널에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저널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게 되기도 했고, 학계 중진으로 저널도 좀 챙겨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올해부터 저널 리뷰 개수를 늘렸다.

     

    학술대회 위원을 하다 보면 학술대회장을 해보고 싶어진다. 어떤 주제로 학술대회를 꾸미고 싶다는 욕심은 학자라면 늘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아이디어에 대해서 누가 무슨 연구를 하고 있나 궁금하고, 내가 하고 있는 연구를 발표할 기회를 찾아내는게 눈뜨면 하는 일이니까. 헌데 학술대회장은 도대체 어떻게 하게 되는 것일까? 새로운 연구 분야에 관한 논문을 발표할 곳이 없다 생각되면 몇몇과 의논해서 학술대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학술대회를 맡아주길 steering committee에서 초청해온다. 누굴 어떤 기준으로 초청하나는 학술대회 위원과 비슷하지만 조금더 경력이 있고,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로 초청을 하게 된다. 학술대회장을 맡게 되면 위원 구성하랴, Call for Papers 적으랴, 논문 제출할 웹사이트 만들랴 제법 바쁘다. 제일 큰 일은 뭐니뭐니 해도 리뷰가 제때 제대로 되느냐는 것이다. 올해 APSys 워크샵을 대회장으로 치뤘는데 2회 째인 하루 반짜리 워크샵 치고 미국, 유럽, 아시아 유수의 연구소 및 학교에서 57편이나 논문이 제출되서 나름 뿌듯했다. 헌데 논문을 냈다가 떨어진 사람 하나가 리뷰에 이유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며 투덜대는 걸 들으면 대회장으로써 굉장히 자존심 상한다. 어느 학회나 탈락된 논문 저자들한테서 불평이 나올 건 예상해야하지만 어쨌건 리뷰의 질 관리가 학술대회장의 최고 중요한 임무이다.

     

    박사 졸업하고 십 년이 넘었다. 박사 때는 그렇게 힘들던 리뷰가 이젠 짧은 대여섯 페이지짜리 논문은 앉은 자리에서 서너편 뚝딱할 정도로 속도감이 붙었다. 학생 때는 세미나에서 무슨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하나, 영어로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가슴 콩닥거리다 시간 다 보냈는데, 이제는 세미나 연사가 단상에 오르기도 전에 논문 제목과 요약만 보고도 하고 싶은 질문을 줄줄줄 꿰고 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내가 읽어본 논문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각도로 논문을 평해주고, 좋은 아이디어를 주는 리뷰를 보면 나도 다음에는 저런 각도에서 평해야지. 때론 학생들이 나보다 더 날카롭게 논문의 장단점을 지적해내면 내가 게을러졌구나 반성하고. 누구처럼 논문만큼 길고 친절한 리뷰를 나도 써줘야할텐데 하고. 이런 학자로써의 욕심을 고단하고 지친다고 놓지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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