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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융합 연구에 부쳐
    Professional 2012. 2. 3. 02:23
    WCU 지원의 웹사이언스공학 전공을 시작하게 되면서 지난  2년 동안 융합 연구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해왔다.  비이공계 배경의 백영민 박사님을 첫 전임교수로 모시면서, 학생들에게 학과 및 연구 내용을 소개하면서.  아직 잘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 2년간의 고민해 온 내용을 털어놔본다.

    내게 전산학 박사가 아닌 사람들과의 융합 연구는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님과의 공동 연구가 처음이였다. 처음 하는 융합 연구다보니 전산 분야와 참 다르구나 느낄 때가 많았다. 우선 논문을 준비하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  전산하는 사람들은 학회 데드라인에 맞추느라 정신없이 달리는데 막상 논문을 제출하고 나면 논문 당락통고와 발표까지는 최소한 반년은 기다린다.  반면 물리학 분야 저널의 경우 편집장이 당락(대개 떨어지는 경우)여부를 일주일만에 통보해주기도 한다. 리뷰 및 논문 게재까지 반 년이 안 걸리는 게 대부분인 듯하다.

    전산학 분야 논문들은 대개 9-14페이지로 제법 긴 편이다.  기승전결로 문제 제기, 해결책 모색 및 평가까지 다 포함되어야 하는데, 물리학 분야 논문들은 6페이지 이내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우선 논문으로 발표해놓고 추후 그 아이디어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를 내리는 듯 싶다.  헌데 분야 전체 순발력이 대단해서 몇 주 간격으로 꾸준히 보강되는 내용이  arxiv.org에 쉴새없이 올라온다.

    네트워크 분석하면서 멱함수(power-law distribution)을 많이 보게 되는데, 우리 분야에서는 다루는 네트워크가 컴퓨터 네트워크 그리고 최근 들어서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정도로 제한되기 때문에 그런 네트워크에서 멱함수가 나왔다는 건 처음 보고하는 연구가 아니면 쓰기가 힘들다.  과학에서 후속검증의 필요성을 간과하는게 아니라 이미 멱함수라는게 알려져있고 그에 대한 문제 및 해결 방안이 컴퓨터 시스템 설계 및 구현에 반영되어 있다면 후속 연구의 임팩트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물리학에서는 종류가 다른 네트워크에서 멱함수 관계를 보인다는게 중요한 발견이다.  물리학은 자연의 universal law를 규명하려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5년이 넘는 공동 연구를 통해 이렇게 다르구나 느끼면서 참 재밌다고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어쩜 저렇게 우리랑 다를까 하면서 말이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분석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왜 이런 현상이 나오는지 설명하지 않고 정량적으로만 접근하는데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분야 논문이 재미가 없어서 읽기가 싫어지던 차, 정하웅 교수님께서 복잡계 네트워크(COREN)라는 학회를 소개시켜 주셨다.  처음 갔을 때는 못알아듣고 해서 재미가 없었는데 몇 번 더 가보니 인문사회학 분야 사람들의 얘기가 귀에 좀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회학 분야분들과 워크샵, 심포지움을 하면서 연구 방법론을 살펴보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정말 많았다.  인터넷에 쌓여있는게 데이터인데 이 데이터를 가지고 우리가 던져야하는 제일 어렵고 힘든 질문이 무엇인가를 같이 고민하고 싶은 동료들을 만났다고나 할까.

    KAIST 부임해서 얼마 안 됐을 때다.  HCI (Human Computer Interface) 분야를 연구하는 E란 친구와 우연히 융합 연구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내가 융합 연구를 막 시작하던 때라서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했더랬다.  융합 연구를 하려면 양쪽 분야를 반반씩만 잘 하면 되냐 물었더니, 양쪽 분야에서 다 잘해야 한단다.  그럼 그게 가능하냐 스스로에게 묻고는 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 친구의 답이 가슴에 와 닿는다.  교직에 온 이후로 끊임없이 하게되는 질문은 학문이 무엇이냐,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과연 교육적 가치가 정말 있는 것이냐는 것이다.  웹사이언스공학 전공이 새로운 학문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융합으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 스스로 타학문과 차별화되는 학문적 기초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미국의 iSchool로 통칭되는 Information School이나 Web Science 학과들을 벤치마킹할 수 있지만, 그들도 이제 시작 단계이다.  그러면서 더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융합을 통해서이건, 하늘에서 툭 떨어지듯 창조를 하건 새로운 학문 분야를 시작한다는 것은 인접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는 어렵다는 것이다.  웹사이언스공학을 하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학부 때 전산학 전공을 하면서 복잡계 물리쪽을 부전공하거나, 수학과 그래프 이론을 열심히 들어 놓거나, 뇌공학이나 Systems Biology 등을 살펴보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과 계통의 학생이라면 이과 전공을 부전공이나 복수 전공하지 않으면 어렵지 않을까 생각들기도 하고.  한 쪽만 어설프게 알아서는 다른 쪽으로 건너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한 분야에서 편하게 살면 되지 왜 이 고생을 해야하느냐 묻는다면 그 답은 가슴 속에 있다.  재밌으니까.  10년 전에 내가 사회학자와 말이라도 섞게 될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재밌다고 새로운 전공, 학과, 분야로 꼭 만들어야 하느냐?  많이 듣는 질문이다.  웹사이언스공학 전공에서 전산학과 인문사회학과의 융합을 생각하는 내게는 제일 절실한 분야가 통계이다.  전산과가 이공계인데 통계가 필요하다?  전산과 교과 과정에 확률통계는 학부/대학원 과정에서 한 과목씩만 들으면 된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자료를 분석하고 의의를 찾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때론 고난이도의 통계 방법론을 습득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반대로 인문사회학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이라면 초대용량 자료를 다룰 줄을 고민해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쪽 다 잘 해야하는 것이다.  또한 인문사회학 이론에 대한 단단한 기초가 없으면 핵심 문제를 도출해내지 못한다.  지금의 교과과정이 제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만 한게 아닐지.

    E가 덧붙여 얘기하길 융합 연구를 한 연구자들은 취직 및 승진에서도 손해를 본다고 걱정을 했더랬다.  그 땐 잘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양쪽에서 다 잘 해도 실적이 이쪽저쪽 반반씩 있으면 각 분야에서 반만 인정을 받게 될테고, 다른 분야 연구 내용을 이해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참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E를 만나면 요즘은 어떻냐고 물어봐야겠다. 미국에서는 iSchool을 통해 어느 정도 융합 연구자들에 대한 평가방법론이 자리가 잡혀가고 있다고 판단되는지 말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고민하면 답을 만들어 나가겠지.  하지만 혼자는 아니다.  첫 융합 연구를 같이 했던 정하웅 교수님 연구실의 안용열 박사님이 이젠 미국 인디애나 대학의 School of Informatics and Computing 학과에 부임하셔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다.  언제든 고민을 같이 나눌 든든한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크게 멀리 한 발자욱 떼어놓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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