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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땐 안 됐고 지금은 된다? 2012년 논문은 국가연구실적 인정을 못 받았지만, 202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Professional 2024. 10. 9. 21:00

    AI 분야 석학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고 떠들썩하다. 노벨화학상도 AlphaFold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와 구글 딥마인드 팀이 받게 되었다. 심지어 2026년 필즈메달도 구글 딥마인드의 수학자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있다. 우리나라도 노벨상을 받기 위해 기초연구사업단들(Institutes of Basic Science)을 만들었고 기초 연구비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 연구는 국내에선 실적을 인정받을 수 없었다.

     

    Geoffrey Hinton 교수가 쓴 "ImageNet classification with deep convolutional neural networks"라는 논문은 무려 13만회가 넘는 피인용횟수를 기록하는 기념비적인 논문이다. 2012년 NIPS(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 학술대회에 발표되었고, 당시엔 불과 100편 남짓한 논문이 발표되던 NIPS라는 학회는 이젠 NeurIPS로 이름이 조금 바뀌어 매년 수천편이 발표되는 해당 분야 최고의 학술대회가 되었다. ImageNet을 처음 만들어 발표했던 Pei-Pei Li 교수의 "ImageNet: a large-scale hierarchical image database" 논문은 2009년 CVPR (IEEE Conference on Computer Vision and Pattern Recognition) 학술대회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2009년 페이페이 교수와 2012년 힌튼 교수가 국내 대학에 있었다면 해당 업적은 카이스트 내부 승진에서만 인정되었고, 국가 연구사업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과제 평가에서는 SCI 저널들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학술대회는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0년대부터 한국정보과학회에서 수 년간 노력해 최우수학술대회 목록을 정리하였고, 공정성 확보를 위해 2014년 공청회까지 열고 나서야 BK와 같은 국가 연구지원 사업에서 "SCI급"이라는 명칭으로 인정해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의 폭발을 가져온 논문들은 국내에선 국가 과제로 지원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벨상을 위해 연구비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규모의 국가에서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전분야 고른 투자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집중 투자할 분야를 선택하기도 해야한다. 어떻게 선택을 해야할까? 우리가 제일 잘 하는 분야를 골라야겠지만,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잘 하는지 어떻게 평가할지는 꾸준히 고민해봐야한다.

     

    2009년 페이페이 교수의 논문과 2012년 힌튼 교수의 논문을 당시 과기부에서 국가 연구실적으로 인정을 해줬더라도 국정감사에서 어떤 기준으로 인정했느냐고 따지면 어떤 대답이 가능했을까?

     

    국내 대학들 중에서는 카이스트가 거의 처음 시작한 영년직 심사가 있다. 서남표 총장님 시절 시작했는데 아직도 신임교수들에게는 제일 스트레스인 승진 제도이다. 카이스트 영년직 심사의 핵심은 추천서이다. 인사위원회 위원들이 작성한 추천서가 아니라 해외 유수 연구 대학과 기관의 교수들이 쓴다. 추천서에는 SCI 논문이 몇 편이라는 얘기는 없다. 어느 저널이나 학술대회가 그 분야에서 큰 영향이 있는데 거기에 꾸준히 논문을 실었다 정도 언급되기는 한다. 추천인은 피심사인의 핵심 논문들에 대한 설명과 그 논문들이 왜 중요하고 어떤 임팩트가 있었는지를 자세히 (대개 3장이상) 적는다. 인사위원회에서는 여러 통의 추천서를 비교하면서 논문들의 의의를 평가한다. 물론 학생 지도, 강의 평가, 연구비 수주 실적, 국내외 학계 서비스 등등 다양한 면에서 평가를 하지만 연구 실적은 정성적인 평가에 크게 의존한다.

     

    이런 정성적인 평가가 국내 학계 전방위적으로 확대가 힘든 이유는 여럿있다. 우선 국내에는 추천서를 이렇게 써 봤거나 읽어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제한적이다. 나만 하더라도 읽어보기 시작한 건 영년직 심사를 통과한 후, 학부에서 신임교원 유치위원장을 맡으면서였다. 교내 여러 인사위를 두루 거치고서야 많은 추천서를 접하게 되었다. 또한 IEEE Internet Award 위원과 위원장을 여러 해 역임하면서 해외에서는 이러한 포상위원회의 추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서를 쓰는 일은 진짜 부담이 된다. 해외 교수들 영년직 심사 추천서를 맡게 되면 그 교수의 역대 업적들을 다시 살펴봐야하고, 그 교수와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학교 교수들과 비교해야하고, 연구 실적 중에서 임팩트가 컸던 실적들을 간추려 적고 그 후속 연구들도 평가를 해야한다. 서너장의 긴 추천서에 담길 내용들이다.

     

    국정감사에 이런 추천서가 인정이 될까? 카이스트에선 영년직 심사를 통과 못 한 케이스들이 있다. 초중고와 대학 교원들의 징계와 불리한 처분에 대한 소청심사를 담당한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제소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도돌이표를 반복한다. 학교에 상관없이 "공평"이라는 잣대에 우리 평가 제도를 맞추라고 하는 억지다. 우리의 승진 평가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는 단적인 예다. 제도라고 하는게 행정의 효율을 위해 정리된 규율인데, 제도가 사회의 발전을 못 따라오고 있는 중이다.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생각보다 흔히 접하는 문제이다.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어떤 제도 혁신이 필요한지 국정감사에서 좀 살펴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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