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꽉 짜여 돌아가는 스케쥴이 벌써부터 목을 조여온다. 올해는 "길고 깊게" 숨을 쉬려고 하는데 초반부터 영 불안하다. 커피라도 한 잔 마셔 신경이 곤두서면 더 하다.
오늘 아침에는 오전부터 학생면담이 점심시간까지 쉴 틈없이 들어와 있었는데, 그 와중에 면담예약을 안 한 학생이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상황이 아니였는데도, "너 뭐야?"하고 말이 곱게 나가지를 않았다. "무슨 일인지?" "어쩐 일이야?" 하고 부드럽게 물어봤어야하는데. 언성을 높인 것도 아니고, 짜증을 내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뱉은 말에 깜짝 놀랐다.
3년 반 전 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학생들에게 말을 쉽게 못 놔서 학생들이 되려 불편해했다. 아직도 반말은 될 수 있으면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3년 가까이 같이 지낸 학생들이 생기다보니 말을 놓게 되고, 가끔씩은 만만해지나보다. 학교에 온 지 반 년쯤 됐을 땐가 외국연사들을 모시고 세미나를 이틀 했었는데 예상못했던 악천후 기상때문에 일이 좀 많았다. 이런저런 일을 학생들에게 지시하는 내 모습을 외국 친구가 가만히 살펴보더니 내가 손가락으로 학생들을 오라가라 했단다. 그 때도 잠시 놀랐었다. 한국온 지 반 년만에 '교수 다되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박사과정 학생들이 교수랑 설전을 벌일 때 가끔씩은 숨이 멎을 듯한 적이 있었다. '와, 저렇게 말대꾸를 해도 안 맞아죽는구나.' 영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지도교수랑 일하는 것을 보고, '와, 저렇게 교수가 학생을 동료처럼 대해주니까 학생들이 기를 펴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고 당당하게 잘 얘기하는구나' 생각했었다. 나도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자신의 생각을 맘껏 펼치게 해주고 싶은데, 어느 덧 '적응'이 지나쳐 고압적이고 상명하복을 기대하는 교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뭐 이렇게 '폭넓게' 자책하고 있을 시간은 우선 없고 ^^ 언어순화부터. 신경 좀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