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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 비수도권과 국내 비수도권에 대한 인식차
    Miscellanies 2011. 5. 3. 17:16
    올여름 일정이 거의 확정되어 가고 있다.  내가 가야하는 외국 출장도 몇 개 있고, 카이스트에 방문하는 외국 교수들 호스팅도 여럿이다.  그 중 한 명은 6월과 8월에 두 번이나 카이스트를 방문한다.  6월 방문은 한국에 다른 일정 때문에 왔다가 카이스트에 오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호스팅하는 것이고, 8월 방문은 국내 행사에 내가 초청한 경우이다.  연구 같이 하는 외국 몇몇 친구들도 일이주 방문할 계획이고.  들락날락하면서 방문하는 친구들 챙기느라 나름 바쁠 것 같다.

    10년 넘는 외국 생활에서 사귄 외국 친구들이 많이들 나를 보러 왔다갔다.  몇몇은 서너번도 넘게 다녀가기도 했으니 서울 사시는 부모님보다 더 자주 다녀간 셈인가?  외국 친구들에게 있어서 대전은 공항에서 버스타고 2시간 반 오면 되는 친구가 사는 도시이지,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가 아니다.  하버드 대학은 보스톤이라는 대도시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지만, 예일 대학은 뉴헤이븐이라는 뉴욕에서 기차나 차로 1시간 반 가량 걸리는 시골 도시에 있다.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나머지 대학들은 더 시골스러운 곳에 있다.  보스톤,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 나오려면 한두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미국 중부에 있는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 대학, 인디애나 대학, 노트르담 대학 등은 시카고까지 가려면 서너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은 런던 북동쪽에 있는 King's Cross 역에서 한 시간 기차로 가야하는 거리이다.  일본 동경대는 일본의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캠퍼스가 여러 군데 흩어져 있어서 동경 시내 캠퍼스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박사과정 유학을 떠나 매사츄세스 주의 앰허스트란 도시에 처음 갔을 때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고속도로에서 나오면  바로 앰허스트가 아니라 Hatfield란 도시인데 평범한 미국 동부의 농촌이다.  널리 펼쳐지는 벌판 중간에 담배잎을 말리는 곳간들이 있고, 옥수수 밭이 보이고, 수수하고 오래된 집들이 거리에 들어서 있었다.  평생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는 눈물이 핑 돌만큼 낯설었다.  내가 이래뵈도 도시녀인데 이런 깡촌에서 뭘 하고 사나 한숨이 푹 나왔더랬다.  그 시골에서 7년을 살고 떠나게 됐을 때 다른 이유로 눈물이 핑 돌았다.  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도시가 얼마나 그리울지 가슴이 아파왔더랬다.

    긴 외국 생활 중 7년을 앰허스트에서 그리고 나머지 3년을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제 사이의 작은 도시에서 살다가 대전으로 오게되니 좋은 점이 많았다.  일단 집값이 싸서 집을 넓게 쓸 수 있었고, 출퇴근이 막히는 교통체증없이 10분내 가능했고, 공기 좋고 조용했다.  아쉽다면 대전이 역사가 없는 도시라서 (미국 사람들에게는 정말 긴 역사이겠지만) 대전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게 한 시간내로 가볼 수 있는 곳이 정말 많다는 정도?

    앰허스트는 뉴욕, 보스톤과 3시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어서 문화적으로 뉴욕, 보스톤에 의존할 수 없는 구조다.  뉴욕에 바로 붙어있는 뉴저지가 베드타운 역할만 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고 할까.  아트시네마도 세 곳이나 있었고, Iron Horse라는 클럽에서는 앰허스트 근방의 밴드들과 뉴욕, 보스톤을 지나가는 공연팀 등으로 거의 매일 알찬 공연으로 북적대곤 했다.  대전에는 그런 대전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이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중이다.

    오늘 오후에 교학부총장님 주재로 학부 교과 과정 논의를 위한 회의에 참석했었다.  이런 저런 많은 얘기를 했는데 그 중 한 꼭지가 우리 사회의 수도권 중심 사고 방식이였다.  대부분의 국내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이 카이스트, 서울대, 포항공대, 연세대, 고려대 정도로 나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에 있지 않은 우리 학교와 포항공대는 수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고등학교에서 입시때 열외로 둔다고 한다.  나 역시 서울대 학부를 다니던 시절 서울 밖에서 산다는 걸 상상조차 못했었기에 이해한다.  하지만 국제화 시대에 미국 깡촌에 있는 아이비리그 대학에는 보내면서 교육비 저렴하고 질 좋은 우리 학교와 포항공대를 수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열외로 둔다는 건 아닌 거 아닐까?

    포항공대 초대 총장님이셨던 김호길 박사님을 어려서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구수한 시골 이장님 같으신 분이 포항공대 총장님으로 오시고 나서는 좀 빤짝빤짝 윤이 나셨을까 했더니 그저 구두 뒷축 꺾어신는 것만 안 하실 뿐 그대로이셨다.  아버지께서 서울에는 자주 올라오시겠네요 여쭸더니 "서울엘 왜 갑니까, 포항에서 일해야지요." 하시면서 껄껄대시던 모습을 보면서 포항공대는 뭔가 다르겠구나 했다.

    교학부총장님 주재 회의를 끝내고 걸어 나오면서 "수도권이 다"라는 인식이 넓고 깊게 퍼져있는 우리 나라 상황에서 카이스트와 포항공대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게 기적이다, 우리 참 대단하다 라고 깔깔 웃으며 헤어졌다.   "생각을 바꾸는 힘" 우리 학교 존재 자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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