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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나믹 코리아 (I): 아프리카와 우리
    Miscellanies 2015. 2. 9. 16:07

    방학이지만 강의만 없다 뿐이지, 여늬 때처럼 학교 안팎으로 분주하다. 이번 주에는 중국 칭화대에서 방문단이 학교에 오는데 우리 전산학과에도 한 시간 방문하기로 되어 있어서 학과장님께서 국제협력위의 참석을 부탁해오셨다.  작년 한 해 우리 학과 국제협력위에서 챙겼던 교류 내역을 살펴보면 러시아, 태국, 우즈베키스탄, 독일, 덴마크, 이스라엘 등등이다.  미국보다는 유럽, 아시아권 대학들이 더 많다.  거리상의 잇점도 있을테고, 국가별 국제 협력에 대한 우선순위가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학과 차원 교류를 빼고, 초청 세미나, 공동 과제, 과제비 수주 등으로 살펴보면 아마도 미국이 제일 많았겠지만.

    몇 년 전인가 아프리카 유수 대학의 전산학과 학과장과 단대 학장들을 초청해서 국제교류 가능성 타진을 위한 워크샵을 우리 학과에서 개최했더랬다.  우리도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는 교수들이 많았고, 그 곳의 실정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어서 추진했었다.  10개 대학 내외에서 학과장, 학장들이 참가해서 자신들의 대학과 학교에 대해 소개를 했는데 제일 놀랐던 통계가 박사 학위 소지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였다.  대학이니까 박사 학위 소지자가 한 명은 있어야 하는데 형편이 좋은 곳은 학과마다 1명씩, 그렇지 못한 곳은 단대에 1명이 있는 정도였다.  대학의 고유 기능인 고등 교육과 연구를 위한 정말 최소한의 여건만을 갖춘 채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였다.  아프리카만 그런게 아니였다.  작년에 방문했던 태국의 작은 학교도 비슷한 처지였다.  우리 학과를 방문한 20명 가까운 교수들 중에서 박사학위 소지자는 서너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대학들이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수백년동안 학문적 전통을 쌓아온 유럽의 대학들이나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19세기부터 식민지 기반으로 국력을 비축하면서 대학을 키워올 수 있었던 일본은 아니리라 쉽게 짐작해본다.  1953년 휴전 이후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아무런 천연자원없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우리가 아닐까.

    1970년대 이전 박사 배출 통계는 웹검색을 쉽게 나오지 않는데, 1970년에는 172명, 1980년대초에는 연 500명 규모였다고 한다.  2008년 통계가 9500명 가량이니 지금은 만명 단위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1960년대에는 국내 박사들의 비율이 60%가 넘었는데 현재는 국내 박사 비율이 30%로 해외 박사 학위 취득률이 높아졌다.

    1950년대에도 국내 대학이 열 개는 있었을텐데, 박사학위를 지닌 교수가 얼마나 있었을까?  1970년대에는?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후반에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는 교수님들이 10분이 안 되셨더랬다.  이 분들이 전산이론부터 컴파일러, 데이터베이스, 운영체제, 네트워크을 다 강의하셔야했고, 대학원생들을 지도하셨더랬어야 했다. 몇몇 과목은 다른 학교 교수님들께서 가르치셨더랬다.  박사 학위 수여라는게 exponential growth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라서 두 세대만 지나면 그 수가 제곱으로 늘어나긴 한다. 예를 들어서, 내가 10년에 박사를 10명 졸업시키고, 그 다음 십년에 그 학생들이 또 10명씩의 제자를 배출하면 20년 동안에 총 배출되는 박사 수는 10x2=20명이 아니라 10+ 10^(10+1) = 220명이 된다.  아주 효과적인 인력배출 방식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 기하급수적 박사 인력 배출이 가능할까?

    왜 이런 통계를 살펴보게 되었냐 하면 최근 국무총리 내정자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로 또 다시 문제로 떠오른 학계의 자정 능력에 대해 생각해보면서다.  이론적으로는 10년에 10명, 20년이면 100명, 30년이면 1,000명, 40년이면 10,000명, 50년이면 100,000명, 이렇게 기하급수적인 박사학위자 배출이 가능하지만, 과연 그렇게 박사 학위를 배출할 수 있는 환경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갖춰질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놀랍게도 지난 50년동안 우리 나라 학계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싶은 기하급수적인 팽창을 해왔다.  우리의 경제력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하급수적인 팽창을 해왔지만, 학계에서 이런 팽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성장이였다고 개인적으로는 판단한다.  숫적 팽창과 함께 질적 팽창도 해왔지만, 그 사이의 임밸런스는 다양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박사학위 표절, 논문 저작권 남용 등등.  대학은 세워야겠고, 교수는 필요한데 박사는 부족하고.  논문 표절 검증하는 온라인 시스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박사 논문 심사위원 절대 수가 부족했던 시절.  부족을 우린 어떻게 메꿨나?  현실 직시와 정직만은 아니였던 것 같다.  박사 학위가 없어도 실력있고 강의 잘 하는 사람들을 교수로 선발해서 후진 양성을 맡길 수 밖에?  그런데 일단 교수가 되면 30년 가까이 근무하게 되니까 학교에선 쉽게 선발하지 못하고.  해서 박사 학위 조건을 일단 걸어보는데, 그러면 어떻게든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무리하게 된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런 고도 성장의 어두운 단면을 이제야 우리는 고위직 인사청문회를 통해 조명해보고, 파헤치고, 후진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50년을 다시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아프리카 대학들이 어떻게 성장해야하냐고 물어오면 우린 뭐라고 해줘야할까?  50년 사이에 우리처럼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50년이 아니라 100년 사이에 성장한다면 어떻게?  박사 학위 소지자가 절대 부족하고, 외국에 박사 심사를 맡길 수 여력도 없는데 어떻게 인력 양성을 하라고 해야할까?  지난 50년 고도 성장의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무엇을 배워가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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