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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논문쓰는 학생들을 위한 논문 작성법Professional 2015. 9. 30. 19:30
이 글은 대학원에 올라와서 첫 논문을 쓰는 학생들을 위해서 적습니다. 20년 전 지도교수를 당혹케했던 작문실력에서 시작해서 지난 10여년간 학생들 논문지도를 하면서 쌓여온 경험을 토대로 정리해봤습니다. "작문"에 신경쓰지 않고, 연구 내용에만 신경쓸만큼 되게 논문을 써오는 학생들은 바로 졸업해나가는게 대학원인지라, 교수의 숙명은 매년 논문을 처음 써보는 학생들과 헤메는 일. 그 일을 좀 쉽게 해볼까 싶어서요.
자,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과가 제법 괜찮습니다. 지도교수가 논문을 써오라고 합니다. 제목부터 정해봅시다. 제목은 너무 일반적이라서 지나치게 큰 문제를 풀었거나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게 보이면 안 됩니다. 문제/해결방법이 다 들어가있도록 정해야합니다. 논문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들을 일단 칠판에 던져보고, 단어들간의 관계를 표현해봅니다. 그 표현된 연결 그래프를 문장으로 풀어냅니다. 영어토박이들처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괴물/사건의 멋들어진 제목은 꿈꾸지 맙시다. 평이하게 내가 한 일을 잘 표현하는 제목을 만드는데 촛점을 맞춥시다. 제목이 여러 개 나오면 버리지 말고 논문 다 쓸 때까지 챙겨놓습니다. 다시 보면 더 나아보일지 모르니까요.
혹자들은 글은 "일필휘지"로 써내려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먹을 갈아 종이에 붓으로 써내려가던, 아니면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적어내려가던 시절 얘기 아닐까요? 그 땐 써놓은 원고를 볼 수 있는 장소, 시간적 제약으로 극소수만 가능했고, 결국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도 한두명이였겠죠. 종이도 비쌌고, 내용을 여러 번 고치기도 힘들어서 "일필휘지" 할 수 있는 소수만 글을 쓸 엄두를 냈을테구요. 21세기는 누구나 쓰고, 온라인으로 "자가출판"을 하는 시대입니다. 논문은 "창작"물이기도 하지만, "문제"부터 "결론"까지의 "생각"을 정리해놓은 "지도"입니다. 한 번에 쓱 써놓고 끝내기 보다는 일단 써놓고 이리저리 고쳐가면서 글을 다듬다 보면 "지도"가 나옵니다. 혼자 가다듬지 않아도 됩니다. 공동 저자들이 같이 작업하기 정말 편해진 시대입니다. 해서 무조건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태줄 수 있는 "일거리"를 던져야합니다.
막상 쓰려고 앉으면 어디부터 써야할까 막막할 겁니다. 논문이니까 서론, 본론, 결론이 있어야하는데 서론이 실은 제일 쓰기 어려운 단락입니다. 우선 서론, 결론은 잠시 접어두고, 본론에 들어가야 하는 내용들을 덩어리 별로 나눠봅시다. 내가 푼 문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섹션 하나. 해결책으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봤는데 그래도 저런 아이디어가 제일 나았다는 섹션 하나. 그게 기존의 다른 방법들과 비교해보니 뭐가 좋더라 섹션 하나. 대충 이렇게 단락지어질텐데 각각 단락에 들어가야 하는 단어들을 쭉 늘어놓으세요. 그 다음에는 그 단어들간의 순서를 정리해보세요. 순서가 얼추 잡히면 논문이 틀이 보이기 시작할겁니다.
다음에는 그 단어들을 문장으로 풀어놓으세요. 소위 full sentence로. 그냥 " simulation with xx and yy"가 아니라 "We run a set of simulations against xx and yy and show zzz." 이렇게 풀리겠죠. 이렇게 단어로 나열되어 있던 연구 내용을 문장으로 바꿔놓으세요. 이 문장들이 정말 잘 정리되면, 섹션에 들어가야하는 단락들의 첫 문장들이 될 겁니다.
자, 여기까지는 "기계적"으로 고민 많이 안 하고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뭘 어디부터 쓰기 시작해야할지 난감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연구를 할 때도 나름 생각해온 논리적 전개가 있기 때문에 아주 어렵지 않아야합니다. 하지만 처음 할 때는 어렵습니다. 20년 전, 제가 첫 논문 쓸 때 여기까지 오는데 잠못자고 뒹굴다가 악몽꾸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젠 기계적으로 하는데. 기계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잔소리해대는데. 저도 처음 쓸 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한두번 해보면 몸에 익고, 그러다 보면 쉬워집니다. 힘내세요.
지도교수로써는 이렇게 섹션별로 문장만 몇 개씩 있는 "뼈대"를 논문 데드라인 두 달 전쯤 보면 좋겠습니다. 너무 뻔한 문장들만 있을지 모르겠고, 빠진 내용도 많겠지만, 그래도 학생이 논문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 만으로도 안심합니다.
그 다음 한 달 동안에는 뼈대만 잡아놓은 섹션을 미친듯이 채워넣어야합니다. 물론 실험이 다 끝나지 않아서 쉽지 않습니다. 실험이 급하고, 그래프 만드는게 급해서 글 쓰기는 자꾸 미뤄집니다. 하지만 논문 작업은 정말 중요합니다. 논문을 써나가다가 보면 급하다고 생각했던 실험이 필요없어지기도, 안 해봤던 실험을 한두개 추가하게도 됩니다. 실험만 하지말고 꼭 병행하세요. 논문의 본론은 자기가 한 일이라서 어찌 보면 머릿 속 내용을 다 털어내는 "core dump"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단 "core dump"만 되면 그 때부터는 순서를 정하고 중복된 내용을 덜어내고, 빠진 내용은 머릿속에서 끄집어 내 빈 곳을 메꿀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와 공동 저자들이 도와줄 수 있습니다. 실험 다하고, 결과 다 나온 다음에 쓰기 시작하면 늦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매주 만나 연구 진행 상황에 대해서 보고 받았고, 논문에 무슨 내용이 들어갈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학생이 논문을 써오면 논리 전개를 전혀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 머릿속 그림과 학생이 생각한 논문 내용의 중요도가 다릅니다. 이게 열이면 아홉 그렇습니다. "뼈대"를 봤음에도 막상 써 온 논문을 읽다보면 나랑 정말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뼈저리게 느낍니다. 작문 스타일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어떤 학생 스타일은 너무나 평이해서 졸릴 정도로 무미건조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설명을 꼬고 꽈서 아는 얘기를 못 알아듣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부분은 주어 없는 수동태 남발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 of ... on ... in terms of ... due to ...." 문장을 즐겨서, 읽다가 길을 잃고야 말게 만듭니다. 그래서 일단 본론만이라도 써서 교수한테 건네줬으면 합니다. 적어도 한 달 전에는. 내용이 다 들어가지 않았어도, 내용 정리를 시작할 수는 있거든요. "우리"가 한 일과 "남"이 이전에 해놓은 일이라도 잘 분류해놓고, 아직 남은 일이 무엇이고, 그것이 결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논문 저자들과 토의해가면서 작업할 수 있게 말입니다. 같이 연구를 하면서 논문에 써놓지 않으면 모르냐 할 수도 있습니다. 헌데 전산분야 논문들은 double-column 10pt로 짧게는 9장에서 12장입니다. 8000-12,000 단어 분량입니다. Single-column, double-space로 하면 20장이 넘어갑니다. 문학상 후보로 나오는 단편 소설들이 대개 5,000 단어 미만이고, 최대 17,000 단어라고 합니다. 어지간한 단편 소설 이상 써야하는 셈이죠. 하룻밤새 쓸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저자들도 어디에 무슨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외우기 힘듭니다. "Core dump"로 내용의 50% 이상이 나와야 교수가 논문 작업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용어를 정리하고, 어떤 개념을 어떻게 소개하고, 어떤 결론을 강조해야할지 등등.
본론은 어찌 되었건 한 일을 잘 정리하면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론과 관련연구 섹션은 조금 어렵습니다. 우선 서론. 이 섹션은 외국에서도 많은 경우 지도교수가 써줍니다. 다행히 전산학 논문의 서론은 "formulaic"합니다. 공식에 맞춰 쓰면 된다는 거죠. 첫 단락은 요즘 트렌드가 어떻다, 큰 그림을 보여줍니다. 두번째 단락에서는 조금 scope를 좁혀서 내 분야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얘기합니다. 셋째 단락에서는 그런데 이런 문제가 발생해서 해결해야되는 상황이다라고 문제 세팅을 합니다. 넷째 단락에서는 이 논문에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풀었다라고 씁니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논문의 로드맵을 넣습니다. 유명한 논문들 서론만 다시 읽어보세요. 백이면 백 이 공식에 맞춰 써놨습니다. 똑같은 공식인데도 읽는 사람에게는 천차만별로 느껴지지만. 이렇게 공식을 알아도 어떤 각도에서 시작해야할지 고민스럽습니다.
서론은 정말 중요합니다. 리뷰어들이 서론을 읽어보고 어느 정도 논문에 대해 감을 잡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이 얼마나 "감"이 있는지 서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생 때나 박사 졸업 후 몇 년동안은 다른 사람들 논문 읽어가면서 고민하느라 서론만 일주일씩 걸렸더랬습니다.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봉이 김선달처럼 말 한 마디로 천냥빚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중요하고 재밌는 문제를 지금까지 아무도 못 풀고 있었는데 우리는 풀었다라고 독자들을 꼬시게 써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처음 쓰는 논문이면 서론은 교수와 다른 저자들과 같이 의논해서 단락별로 뭘 쓸지 정하고 쓰면 좋습니다. 저도 서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써야 좋을지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
다음, 관련 연구 섹션. 관련 연구 섹션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종합선물세트처럼 강약없이 늘어놓지는 말고. 두세 주제 정도로 압축해서 해당 분야 관련 논문들의 내용과 우리 연구와는 연관성 내지는 차별성을 적습니다. 요즘처럼 피인용횟수를 쉽게 살펴보고, 다른 논문들에서는 특정 논문을 어떻게 평가했나 바로 뒤져 볼 수 있는 세상에서는 예전만큼 어렵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색깔"을 가진 "평"을 쓰는게 중요합니다. 이 섹션은 연구하면서 조금씩 써놓으면 좋습니다. 관련 논문 서너개를 같이 보고 정리해놓는 방식으로.
서론, 본론, 관련 연구 섹션까지 해서 데드라인 한 달 전에 일차 드래프트가 나오면 교수가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미리 논문을 써온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교수에게 현실은 대체로 암울하지만요.
결론과 요약은 거의 기계적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논문 작업을 전혀 안 한 제 3자가 지금까지 쓰여있는 부분을 읽어보고 써 줄 수도 있습니다. 결론에는 앞으로 이 연구를 어떻게 발전시켜야할지가 들어가야 해서 제 3자가 쓰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논문 내용을 정리하고, 이 논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다른 관련 연구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풀어써주는 부분은 같은 연구실 학생이면 얼추 써 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결론 빼고 읽은 다음, 결론을 한 번 써보세요. 스타일은 전혀 다를 수 있지만 내용은 얼추 다 들어갔는지, 난 이렇게 정리했는데, 저자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비교해보심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요약은 아주 급하면 논문의 여기저기서 key sentence 들을 모아서 만들 수 있습니다. 서론의 세번째 단락과 네번째 단락 대부분이 요약으로 들어가고, 각 섹션의 대표 문장들을 나열하면 급한 불은 끕니다. 하지만 예민한 리뷰어들이라면 논문 여기저기서 줏어온 문장들을 쪽집게처럼 알아맞추고는 성의없이 썼다고 불평합니다. 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논문에서는 어떤 문제를 이렇게 풀었고, 결과가 좋았다라고 쓴다 생각하고 줏어온 문장들을 좀 다듬으세요. 이게 급할 때 쓰는 방식이라고는 했는데, 실은 전산분야에서는 요약을 논문보다 일주일 전에 등록해야하는 학회가 많아서 요약을 논문이 완성되기 전에 써야하죠. 요약은 리뷰어 배정에 쓰이기 때문에 중요하긴 하지만, 최종 논문 제출할 때 수정할 수도 있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담담하게 이 논문은 무슨 문제를 어떻게 풀었고, 결과가 어땠다 정도로 풀어쓰세요.
첫 논문. 제가 20년 전 처음 논문을 써야 했을 때 눈 앞이 하얗고 막막했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글이 그 막막함을 더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Postscript:
논문 작업을 할 도구는 어떻게 선택하나요? 저희 분야는 latex 을 많이 쓰고, 저도 MS word 작업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latex 환경만 씁니다. 언제 어디서든 모든 저자들이 논문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는지 한 눈에 보기 위해, 예전에는 SVN 세팅을 해놓고, 논문 섹션별로 파일을 나눠놓았습니다. 관련 논문도 같이 체크인해놓으면 손쉽게 훑어 볼 수가 있어서 편했습니다. 헌데 SVN을 가지고 데드라인 몇십분전까지 작업하다 보니까 가끔 체크인 버젼 충돌 때문에 실수를 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4년부터는 sharelatex 을 쓰고 있습니다. http://www.sharelatex.com/ 사이트는 가끔 연결이 불안해서 데드라인 한 시간 남겨놓으면 마음을 졸이게 되더라구요. 해서 로컬서버에서 따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작업을 하면서 작업한 내용이 바로바로 업데되어서 큰 문제가 없지만, major revision 때는 snapshot이 있었으면 하는데 그 기능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참고문헌
[1] "Writing with power: techniques for mastering the writing process" by Peter Elbow. 2nd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단어부터 나열하고 문장으로 풀어쓰기.
[2] "Top-10 Tips for writing a paper" by Jim Kurose. 서론은 formulaic 하다는 조언. http://conferences.sigcomm.org/co-next/2006/files/pres/10tipsforwritingapaper.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