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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부생 연구에 대한 소견
    Professional 2014. 7. 8. 13:49

    올초부터 전산학과에서 교수 회의 토의를 거쳐 학부생들의 연구실 상주를 권장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는 학부생들과의 연구는 교내 Undergraduate Research Program (URP), 개별 연구, 졸업 연구, 캡스톤 프로젝트 지도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우리 학과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연구실에 학부생 상주는 권장하지 않았더랬다.

    2003년 처음 부임했을 때 학생들이 별로 없던 시절, 학부 졸업생 중에서 유학가기 전에 연구원으로 일하고 싶어했던 학생들, 학사/석사 통합의 5년제 과정을 하면서 우리 학교로 인턴쉽 겸 교환학생을 온 5년차 외국학생들 등을 연구실에 데리고 있어봤고, 서버 관리하는데 하드디스트 포맷팅, 서버실 정리, 네트워크 관리 등등 시간이 걸리는 잡일을 위해 학부생 관리자를 두어봤다.  이번 학과 방침 변경으로 학부생을 연구실에 호스팅하는데 자유로워졌지만 나름 걱정되는 점도 좀 있다.

    당연히 장점도 있다. 관심 분야에서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하는지 경험해보는 기회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헌데 상대적으로 단점도 꽤 많다.

    우선, 학기중에는 강의 준비와 숙제, 시험 이외에 다른 일을 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학점을 굉장히 줄이지 않는 이상 연구를 진행하기 어렵다.  학점을 거의 안 듣고 연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교육자 입장에서는 원칙적으로는 반대이다.  학부 교과 과정은 교수들이 정말 신경을 써서 준비하는 존재의 최고 이유다.  연구를 통해 실적도 내고, 과제비도 따와야 하지만, 학교의 지상 목표는 교육이다.  대학원 강의는 아직 교과서로 잘 정리되지 않은 최신 연구 동향을 대학원생들과 같이 훑으며 공부하지만, 학부 강의는 많이 정리되서 교과서도 있고, 전산학 전공이라면 꼭 배우고 나갔으면 싶은 내용으로 채우기 때문에 강의보다 연구를 더 해야한다는 논리라면 역설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해서 교과과정으로 만드는데 더 노력을 쏟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연구실에 와서 한 학기 연구만 하겠다고 학부생이 오면 나는 전필과목 외에도 데이터베이스, 컴파일러, 데이터 마이닝, 텍스트 마이닝, AI/Machine Learning, 컴퓨터 그래픽스, 계산기하학 등등의 전선과목들, 아니면 수학과에 가서 해석학, 고급 통계를 듣는게 나와 지금 연구하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고 돌려 보내겠다.

    또 다른 단점은 특정 연구실에 줄서게 되는 것이다.  대학원에는 우리 학교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타대생들도 많이 온다.  지난 십년간 특출한 타대상들을 지도해본 사람으로서, 타대생들에게도 모든 연구실에 공평하게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건 나 뿐만 아니라, 학과 교수님들이 공감하는 정말 중요한 이유다.

    어느 한 연구실에 가서 연구를 해보니 연구 내용도 좋고, 교수님, 선배들도 좋은 경우도 있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개인 관심 분야와 좀 떨어져서 대학원 진학시 연구실을 바꾸고 싶어도 불편해서 못 바꾸는 경우가 생기면 안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과목마다 강도가 달라서 12학점을 들어도 고될 수가 있고, 15학점을 들어도 생각보다 편하게 한 학기를 보낼 수도 있지만, 10학점 이상을 듣는 경우라면 내 판단으로는 연구에 매진하기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해서 방학 중이나,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 정도에 연구실 입실을 추천하고 싶다.

    고등학생들 스펙쌓기에도 논문 실적이 들어갔다는 최근 뉴스를 보니, URP 등의 연구를 통해서 학부생들도 논문을 내는 우리 학교 현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괜한 초조함에 학생들을 또 몰아붙이는 것 아닐지 걱정도 된다.  인생 길다.  4년 배워서 30년 이상 해당 분야 전문가로 활동한다는 건 뭔가 계산이 어긋나는 것 아니겠는가.  학부 전공이 30년 동안 꾸준히 배워서 성장해나갈 수 있는 기초와 방법론을 배우는 곳이다 생각하면, 몇 년 논문 먼저 나가고, 늦게 나가는게 무슨 큰 대수이겠는가.

    80년대 대학가는 최류탄으로 매일 매웠고, 방학 때는 농활로 교정은 텅텅 비기 마련이었다.  대학 4년간 제일 힘들었지만 두고두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밤새서 컴파일러 짜고, 어셈블러 짜고, 꼬이고 꼬인 recursive function 짜던 밤시간들이 아니다.  아마츄어 햄써클 운용부장으로 15명을 이끌고 갔던 지리산 천왕봉 DX-pedition이다.  돌이켜보면 산행/등산에 대한 기초지식없이 시도했던 산행이였음에도 부산대 아마츄어 햄 써클에서 산을 잘 타는 YB 2명이 지원나와준 덕분에 정말 다행으로 큰 사고없이 내려왔더랬다.  무모했던 지리산 종주 계획을 포기하고, 장미비 때문에 2박이나 하고서야 겨우 천왕봉 찍고 세석으로 내려왔던 3박 4일의 기억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큰 힘이 되어 준다.  그 장마비에 그 험한 길을 그 많은 사람들이랑 큰 사고없이 다녀왔다는게 얼마나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소스"가 되는지. (그 때 그 험한 산행에 그 무거운 짐들을 아침마다 집어들고 가줬던 동기들, 선후배들과 HL0M의 YB 두 분께 아직도 얼마나 고마운지.)

    올여름 휴가는 여기저기 하루 이틀씩 밖에 못 잡아서 불안하다.  한 1-2주 푹 쉬고, 머리를 비워야 다시 가을학기에 힘내서 일을 할 수 있을텐데.  방학 때 연구하겠다고 하는 학부생들이라도 최소한 1-2주는 스스로를 보듬고 달래주는 휴가를 챙기길....  가을 학기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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